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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남한강, 숨겨두고 싶은 한국의 美
생명의 강에서 역사의 노래를 듣다
정영목ㆍ장동광 지음, 사진 이종수
명상 발행 1만6,500원




한국의 풍광은 볼품 없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장대한 지평선도, 거대한 바위 계곡도, 바다 같은 강도 없는 게 우리의 산야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위용만이 아름다움을 좌우할까. 보일 듯 말 듯 얄궂게 감춰진 미(美)를 볼 눈이 없는 것을, 누구를 붙잡고 탓하랴.

대대로 우리가 품고 숨쉬고 밟아 온 이 땅의 자연은 살붙이처럼 정겹다. 우리의 문화와 풍속이 모두 이 땅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체화된 속정은 여기에 속해있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귀한 정서다. 이런 속정이 깊은 사람들일수록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입는 환경과 전통 문화의 소실이 더욱 안타까울 터다. 조금만 경치가 뛰어 나다 싶으면 어김없이 골프장과 모텔, 식당이 들쭉날쭉 들어서서 풍광을 황폐하게 만들고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도 사정없이 헤집는다.

“지어라, 지어! 대신 제발 환경에 거스르지 않게 자연스럽게만 지으란 말이다!”. 변질되어가는 남한강변의 모습에 불쑥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조각가 이종빈은 ‘양평0412’라는 조소작품에 자신의 안타까움을 담았다. 선글라스를 낀 남성 두상의 눈동자에 모니터를 설치하여 카페와 모텔, 레스토랑이 즐비한 남한강변의 모습을 비추는 작품이다.

비단 이종빈 뿐만이 아니다. 서양화가, 동양화가, 판화가 등 서로 지향점과 작업 스타일도 다른 미술가 15인이 남한강의 자연 생태와 이곳을 터전 삼은 삶과 풍속,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각자의 방법론으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10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학고재아트센터와 소격동 학고재화랑에서 ‘미술가들이 본 남한강-자연과 역사 전’이란 이름으로 전시됐다.

‘생명의 강에서 역사의 노래를 듣다’는 바로 이 전시회의 일환으로 발간된 책이다. 전시회의 기획 의도부터 미술가들과의 현장 답사기,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평적 해설 등이 제법 무게감 있게 담겼다. 전시회를 직접 찾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지면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작품의 의도와 속내를 작가 스스로 드러내 주는 작가 노트가 에세이처럼 곁들여져 있고 저명한 큐레이터인 장동광 교수가 작가론까지 풀어 놓아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매우 풍성하다. 또 사진작가 이종수가 두물머리, 이포나루터, 남한강, 주변 문화재와 사적지 등을 찍은 사진 작품들도 책장 곳곳에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

공동 테마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책을 엮은 15인의 미술가들은 모두 남한강변의 양평에 작업실을 둔 공통점이 있다. 길게는 십수 년에 걸쳐 양평에 터를 잡은 이들이라 이 지역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거기다 보통 사람들의 무심한 눈길에 잡히지 않는 사물의 이면을 포착하는데 탁월한 미술가들인 만큼, 저마다의 작품이 모두 창조적인 생동감과 애정으로 넘친다.

400여km를 도도히 흘러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한강의 생명력. 그 생명 에너지를 생활의 원천으로 삼아 일군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점점 퇴색되고 잊혀져 가는 흔적들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아련한 그리움 같기도 한 진한 상실감이 밀려 든다.

거침없는 필획으로 녹색의 산과 푸른 물을 화면에 압축한 강경구의 ‘물길 - 파사산성’. 흙물을 이용한 자연 색감에 자수를 놓듯 천연 염료로 배치한 풀, 꽃, 물 등이 자연의 속삼임을 전해 주는 듯한 김승민의 ‘낮은 곳으로 흐르다 - 수종사’. 야외 설치 미술을 고집하며 자연을 캔버스 삼는 생태 미술가 최운영의 ‘어디선가 날아 온 콩깍지’.

수 많은 말을 대체하는 한 장 그림의 미덕을 절감한다.



이기연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


입력시간 : 2004-12-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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