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기술의 진보와 삶의 질


2005년은 한국 방송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해가 될 것이다.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아직 그 개념조차 잘 모르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 중에 이 새로운 매체는 우리 손에 들어온다. 이제 TV는 가정이나 사무실에 앉아서 보는 매체가 아니다. DMB는 차량에 장착된 단말기나 휴대전화를 통해 위성으로부터 전송되는 TV화면을 볼 수 있게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DMB는 움직이면서 보는 TV이자 손에 들고 다니는 TV다. 위성을 통하지 않는다는 점만 다를 뿐 같은 원리인 지상파 DMB도 사업자 선정에 관한 윤곽이 드러나 있는 상태여서 머지않아 서비스가 시작될 전망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는 것은 순리다. 진공관이 라디오를 만들었고, 영상기술이 텔레비전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계속된 통신기술의 발전은 이제 방송을 더 깨끗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하는 DMB로 나아가고 있다. DMB의 가장 큰 속성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과를 끝내고 가정에 돌아가서야 비로소 TV를 켜고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TV는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그는 잠 잘 때를 제외하고 항상 우리를 좇아 다닌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우리를 얼마나 더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얼마나 더 유익할까.

DMB정책은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시작됐다. 해당 부서인 정통부가 제시하는 이 사업의 명분은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인 파급 효과다. 우리 기술을 세계표준으로 만들어 국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다. 또 하나의 명분은 고용확대다. 새로운 매체의 출범은 신규 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면 고용확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 기술이 세계표준이 된다면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매체가 늘어나면 상당한 인력이 필요할테니 고용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그럴까.

새로운 매체는 그 매체를 수용할만한 시장의 수요가 있어야 한다. 지상파와 위성 DMB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고 나면 최소한 15개 이상의 영상매체와 30개 이상의 오디오 매체가 새로 생긴다. 우리에게 이 정도 숫자의 새로운 매체가 필요한 것일까. 이미 운용되고 있는 지상파 TV와 라디오, 그리고 케이블과 위성방송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수요를 넘어서는 공급이 주어지면 과잉경쟁은 필연적이다. 과잉경쟁에서 패배한 업체는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 될 수밖에 없다. 시장의 논리대로 하면 어색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해당 매체의 종사자들은 경쟁논리에 매몰돼 허덕일 것이며, 도산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하다. 더구나 지역방송들은 더 심한 어려움에 처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로 그 지역방송들도 처음에는 고용확대를 꾀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은 자연스러운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자(墨子)의 가르침 가운데 이런 주장이 있다. “만 명에게 약을 써서 서너 명만 효험을 보았다면 그는 양의(良醫)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이 아니다. 그러한 약을 부모에게 드리겠는가?” 좌절한 많은 패자들의 비극을 딛고 소수의 승자를 만들어내는 정책이라면 그것이 제대로 된 정책이겠냐는 비유이다.

기술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 방송기술도 발전한다. 그러나 방송기술의 발전이 다수 방송 종사자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입력시간 : 2005-01-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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