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백세] 생체리듬과 건강한 삶


리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음악에서도 리듬이 중요하지만 건강을 유지하려면 리듬을 타야 한다. 인체는 스위치를 누르면 언제나 똑같이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여러 악기의 음이 조화를 이루듯 각 장기들이 서로 협응하고, 리듬을 유지해야 건강이 확보될 수 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급격하게 변하고, 식사 시간이 들쭉날쭉 해지면 생체의 리듬이 흔들린다.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잦은 연말엔 특히 건강 리듬이 흔들리기 쉽다.

생체 리듬이 깨지면 건강은 당연히 나빠지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하루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면 소화기도 식사 시간 전에 미리 소화액을 분비해 음식물이 들어올 것에 대비한다. 일정한 시간에 식사를 하면 소화기에 무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식습관이 불규칙해지면 자율 신경계가 혼란에 빠진다. 소화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음식이 안들어 온다. 반면에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음식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된다.

이렇게 아무 때나 음식이 들어 오는 일이 계속되면 결국 자율 신경의 리듬은 사라진다. 들어올 때에 적절히 반응하는 체제로 바뀌고 결국 소화 기능은 저하되게 된다. 계획성이 부족한 상사가 일의 우선 순위도 정해주지 않으면서 수시로 일을 던져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규칙적인 생활을 이야기 하면 어떤 생활이 가장 이상적이냐는 질문이 나온다. 정답은 “자연의 리듬에 따르라”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양생법이다. 병이 나지 않게 미리 막고 천수를 누리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변화에 맞춘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한의학 책 중에 가장 오래된 황제내경에 여름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겨울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써있다. 계절별로 잠자는 시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해가 뜨면 양기가 충만해져 활동하는데 알맞고, 해가 떨어지면 음기가 강해져 몸의 움직임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계절별 수면 리듬의 변화는 전기불이란 문명의 혜택을 받기 전엔 너무 자연스런 것이었다. 해지고 두 세시간 정도 있으면 자고, 먼동이 틀 때 즈음에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런 생활 리듬이었다. 하루의 리듬을 결정하는 것도 수면시간, 구체적으로 말하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지 2백만년 이상 되었다고 본다. 인간은 그 동안 해가 떨어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생활을 해 왔다. 어두운 밤에 돌아다니면 맹수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었고 사고의 위험도 높으니 밤은 잠자는 시간이었다. 60년대 후반까지도 전기는 도시에만 공급돼 지금과 같은 야간 활동은 상상을 하기 어려웠다. 어릴적 할아버지 댁에 가서 등잔불 밑에서 사촌형들과 노닥거리다 보면 10시 전에 “석유 닳는다. 일찍 자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을 정도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인간의 수면 시간은 올빼미형이 아닌 ‘주간형’이었다. 그 동안 유전자 내에 주간형 리듬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인체내의 프로그램, 즉 리듬은 서양의학적으로도 잘 밝혀져 있다. 많은 논문에서 성장 호르몬이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나오고 이 시간에 피로 회복도 가장 잘된다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 정도까지 단기 기억력이 가장 좋은 이유도 우리가 휴식을 취한 뒤 우리가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10시면 잠자리에 들고 4시면 일어나는 스님들의 생활이 생체 리듬에 가장 적합한 생활일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 ‘아침형 인간’이 성공을 한다는 책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건강에도 좋고 효율적이란 설명이다.

요즘 직장을 다니면서 어떻게 10시에 잘 수 있느냐고 말씀하신다면 늦어도 12시엔 잠자리에 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피로가 가장 잘 회복되는 시간을 피해 잠을 자고, 일의 효율이 가장 좋은 아침 시간을 몽롱하게 보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건강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리듬이 수면이라면 그 다음엔 식사와 배변이 있다.

예로부터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소화기도 규칙적인 것을 좋아한다. 식습관이 불규칙한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면 건강이 좋아지는 이유는 뻔하다. 자기 혼자서는 불규칙한 식사습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편이나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다 보면 식습관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중요한 건강의 리듬이다. 아침의 쾌변을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건강은 차이가 난다. 한의학에서 여성의 건강을 측정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월경을 보는 이유도 다름 아닌 리듬 때문이다. 생리 주기가 바뀌거나 생리를 거른다면 분명히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이렇게 생활 리듬을 강조하면 삶이 단조롭게 되고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너무 뻔하지만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평균 수명은 80 가까이 늘어나 퇴직 후에도 살아야 할 기간이 긴데, 건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규칙적인 삶이 생체 리듬을 유지해 건강한 삶을 사세요. 건강을 잃으면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황&리한의원 원장

입력시간 : 2005-01-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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