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예수/길희성 지음/현암사 발행/8,500원

[출판] 경계를 허물고 들여다 본 종교의 본질
보살예수/길희성 지음/현암사 발행/8,500원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금도 세계 곳곳의 하늘 아래서는 매일 수십 수백 명이 죽어 간다.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양상과 강도만 조금 다를 뿐 우리에게도 종교간 갈등과 알력은 남의 일이 아니다.

흔히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은 ‘종교의 백화점’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다양한 종교가 부글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한 집안의 부모 형제가 모두 다른 종교를 가진 경우도 있는 걸 보면, 다종교 현상이 얼마나 심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요즘 결혼하는 신세대 부부들 중에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각자 믿음 깊은 경건한 가족들은 주말마다 교회로, 사찰로, 사원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마련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의 이런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처럼 획일화된 종교 국가에서는 대부분 태어나면서부터 특정 종교에 소속되게 된다. 따라서 우리처럼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하거나 종종 다른 종교로 개종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 한국의 종교적 상황이 매우 특수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다종교 현상이 심화될수록 갈등과 반목도 커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종교간 마찰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적은 없지만 안심할 계제는 아니다. 종교의 차이 때문에 가족의 장례를 놓고 심각한 가정 불화를 겪는 일도 흔하고, 학교나 직장에서도 종교 문제가 알력과 긴장 관계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안한 정서들이 쌓이다 보면 머잖아 사회 문제로 비화될 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종교인들은 종교의 개방성을 추구하며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화합을 추구하기도 한다. 종교적 다원주의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선이요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다른 종교들의 참됨을 함께 인정한다. 완전한 종교란 있을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자신의 신앙에 헌신하면서도 타 종교에 대해 진지한 이해를 구하여 상호 변혁과 쇄신을 꾀하려는 것이다.

‘보살예수’라는 논쟁적 제목의 책을 내놓고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모색한 서강대 길희성 교수. 그의 연구는 바로 이 다원주의의 테두리 안에 놓인다. 그는 신앙심 깊은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불교의 정신에 매료되어 30여년간 불교를 배우고 연구해 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불교와 기독교의 교리와 사상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그리고 두 종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결국은 한 곳을 가리킨다고 역설한다.

책은 2004년 초,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의 일요 신학 강좌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제목으로 총 10에 걸쳐 강의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두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을 논리와 객관을 가지고 심층 비교하여 종교간 경계를 허물었다.

저자에 따르면 불교와 기독교의 본질은 ‘탐욕적 세간’과 ‘죄악 세상’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하여 개인과 사회의 영적 혁명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상, 초월적 구원을 실현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열반’ 또는 ‘불국토’라고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하느님 나라’로 부르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만약 예수가 동양에서 태어났다면 자기를 완전히 잊고 타인을 향해 절대적으로 헌신한 그에게 ‘무아(無我)적 자비를 실천한 보살’이라는 평가가 내려졌을지 모른다. 또 붓다가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태어났더라면 이타적인 헌신과 만민평등의 사랑을 실천한 인류의 구원자로 추앙됐을지 모를 일이다.

인간 붓다와 인간 예수, 공과 하느님, 불성과 하느님의 모상, 자력과 타력 등 불교와 기독교의 핵심 주제를 열린 마음으로 들여 본 고민과 사색의 결과물 ‘보살예수’. 저자는 두 종교가 적극적이고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여 ‘사랑’과 ‘자비’ 속에서 화합하기를 바라고 있다.


입력시간 : 2005-01-0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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