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잡고 싶은 황혼의 사랑우리 모두의 현재와 미래 자화상, 애잔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
[문화비평]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부여잡고 싶은 황혼의 사랑 우리 모두의 현재와 미래 자화상, 애잔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 지금은 겨울의 한가운데, 마음이 따스해지는 연극 한 편을 소개한다. 지난 2003년 5월 아리랑 소극장에서 제목 그대로 극은 한 늙은 부부의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에 젊은 세대가 공감하지 못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포함한 우리 관객 모두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자화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 주제로는 흔하지 않게 나이 지긋한 분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애잔함과, 그래서 더욱 아기자기하고 애틋한 새로운 재미가 생겨난다. 연극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특히 해로하신 부부께서 함께 보신다면 많은 부분 공감 하면서 한 편의 연극과 함께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듯 하다. 공연 안내문에 따르면 90일간 1600여 쌍의 연인과 부부가 공연을 관람했고, 2003년 서울공연예술제 공식초청작이자 그해 한국연극협회 주관 베스트 7연극으로 선정된 바 있다. 봄에서 초겨울로 이르는 삶의 시간들
햇살이 따가운 어느 봄, 이점순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에 박봉만 할아버지가 찾아와 방 한 칸에 월세를 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아내와 사별하고 자신에게 무심한 두 아들과 서로 거의 연락이 없다. 할머니는 오래 전 남편을 여의고, 출가한 세 딸에게 부담이 될까 홀로 산다. 예전에 밥집 주인과 고객 사이로 알고 지내던 이들 두 노인이 다시 만나 결코 우연하지 않은 동거를 하게 되는 이 집은 마치 세상에서 아주 떨어져 나온 듯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누리는 마지막 삶과 위안의 공간이다. 봄에서 겨울로 나아가는 길지 않은 이들만의 행복한 시간은 할머니의 지병으로 인해 끝이 난다. 삼라만상이 소멸에 이르는 겨울이라는 자연의 시간은 할머니의 삶이 이미 마감된 시간과 겹쳐지면서 극은 더욱 애틋하고 애잔한 정서를 띤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위해 짜던 털 스웨터를 할머니의 막내딸이 완성해서 보내왔을 때 누구나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의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감동으로 모습이 바뀌며 살아 남는다. 할아버지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면서 하늘을 보며 허허로운 웃음을 지을 때 관객은 각자 자신에게 소중한 이들, 그리고 지금 이순간의 소중함과 아쉬움을 새롭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맛깔 난 일상 언어와 자연스러운 연기 극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두 사람이 서로 밀고 당기며 벌이는 신경전은 큰 갈등이 없이 진행되는 이 극을 이끌어 나가는 주요 원동력이 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고받는 대화는 그래서 더욱 살갑고 앙증맞고 따스하다. 딱히 극적인 사건이 없는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이들은 마늘을 까고, 고스톱을 하고,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마늘처럼 매섭고 싸움닭처럼 톡톡 쏘기만 하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와의 벽을 허무는 데는 ‘욕하기’와 화투가 큰 역할을 한다. 한결 부드러워진 이들의 관계를 표상하듯 이때부터 배경음악이 들려온다. 독백이건 대화이건 극을 이끄는 중심에는 항상 맛깔스러운 언어가 있다.
언어와 더불어 등장 인물을 구현하는 배우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무대나 의상, 조명 등 언어 외의 다른 연극 언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이 연극에서 배우는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전 공연에서
두 사람은 오래 함께 작업해 왔으며 특히 <피고지고 피고지고>(2001), <집>(2003), <뇌우>(2004) 등에서 좋은 앙상블을 보여준 바 있다. 이들은 대사 전달이 분명하고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한 이해가 확실한,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진 배우들이다. 이 공연에서도
작가이자 연출가인
입력시간 : 2005-01-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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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숙 연극평론가 ryu1501@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