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하고 기품있는 난의 여왕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풍란
순결하고 기품있는 난의 여왕

풍란은 이름 그대로 바람을 맞고 사는 난초이다. 가장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으면서도, 더없이 순결하고 기품 있으며 향기롭다고 알려진 난초가 바로 풍란이다.

풍란은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상록성이므로 꽃이 없는 시기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다. 흔히 난초가게에 가면 소엽풍란과 대엽풍란이 있어 이를 구분하는데, 식물학적으로 소엽풍란이 그냥 ‘풍란’이고 대엽풍란은 ‘나도풍란’이다.

풍란이 사는 것은 바닷가 절벽의 바위틈이나 혹은 나무둥치 위. 어떻게 이런 곳에 뿌리를 박고 양분과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만큼의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 대신 바닷가에 있으므로 공중 습도는 아주 높은 곳, 아침이면 물안개가 머물 수 있을 정도에 자란다는 특징이 있다.

이웃하는 중국과 일본에도 자란다. 풍란이 우리의 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풍란을 만나보기는 참 어렵다. 함께 실린 사진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자생지의 풍란이 아닐까 싶다. 풍란보전을 위해 자생지를 확인하러 다닌 연구자들이 직접 보았다는 사람들의 안내로 찾아갔으나, 자생지라는 데서는 모두 한 촉도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만일 새 자생지를 안다면 이 땅에서의 멸절을 위해 꼭 연락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물론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남들이 갖지 않은 희귀 난초를 소장하겠다는 일부 그릇된 난초 애호가들의 수요에 따라 모두 캐어 갔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절벽 중간에 있는 풍란을 채취하기 위해 로프를 타고 내려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금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풍란들은? 물론 재배한 것이다. 워낙 귀하다 보니, 조직 배양으로 대량 증식하여 판매하는, 말하자면 복제품이다. 진정으로 풍란이 좋다면 이렇게 인공 증식을 한 것을 곁에 두고 보고 사랑하면 좋으련만, 왜 지금도 야생의 풍란을 찾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풍란은 상록성이어서 겨울에도 빛나지만 꽃이 피는 시기는 한 여름이다. 7월이면 순백의 꽃송이들이 잎 사이에서 꽃대를 올려 피워 낸다. 그리 험한 조건에서 어찌 그리 고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세상에 욕심일랑 버리고 살았기 때문이리라. 풍란의 그런 심성을, 그 꽃빛은 그대로 담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바위 위나 나무의 깨끗한 곳에서 고고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선초’,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간다고 해서 ‘불사초’, 풍란의 품종을 부귀한 사람이 지닌다 하여 ‘부귀란’ 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 명치시대하에 생겨난 이름들이라, 기피돼 지기도 한다.

만일 인공적으로 증식한 풍란 한 촉 가지고 계시다면, 혹 이 기회에 곁에 두고 싶으시다면 반 그늘에서 언제나 공중에서, 습도가 높되 바람은 잘 통하게 관리하면 된다. 지나친 물주기가 뿌리를 썩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풍란은 더없이 가녀려 보이지만 국수다발같은 굵은 뿌리를 달고 바위에 붙어 산다. 풍란이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는 것은 이 근본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새 해에도 어려운 일이 정말 많겠지만, 풍란처럼 든든하게 기초를 다지고 언제나 푸르고 싱그럽게 꿋꿋이 견디며 아름답고 향기롭게 꽃을 피워내는 우리 모두였으면 싶다.

입력시간 : 2005-01-1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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