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다리 하나 들면 동해의 맛이 모두 내 손안에…꽉찬 속살 담백한 맛의 '영덕 대게', 2~4월이 제철

[주말이 즐겁다] 경북 영덕
대게 다리 하나 들면 동해의 맛이 모두 내 손안에…
꽉찬 속살 담백한 맛의 '영덕 대게', 2~4월이 제철


겨울은 대게의 계절이다. 대게는 기온이 내려가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맛볼 수 있으나, 속살이 꽉 차고 담백한 맛을 보려면 아무래도 2월에서 4월 사이가 가장 좋다고 어민들은 귀띔한다.

대게 하면 일단 ‘영덕 대게’다. 물론 이웃의 포항과 울진 앞바다에서도 대게가 잡히지만 아직 ‘영덕 = 대게’라는 인식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어귀에 있는 강구항(江口港)은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외지인의 발길이 많지 않았다. 낙동 정맥 동쪽에 치우쳐 있고, 고속 도로가 연결되지 않아 접근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이 곳이 항구로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본인들이 자국민을 위한 어업 기지화를 위해 항구 건축 공사를 하면서부터다. 광복 후 대게 통조림 가공 공장이 생겨 대게의 집산지가 됐고, 현재는 강구항 주변으로 영덕 대게 전문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새벽을 여는 어판장, 활기찬 기운 가득
어느 바다나 마찬가지지만, 강구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활기찬 기운을 느끼려면 이른 아침에 위판장을 찾을 일이다. 항구 너머로 붉은 햇덩이가 떠오를 무렵이면 밤새 거친 바다에서 조업한 배들이 하나 둘 부두로 들어선다. 만선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갯짓하며 환영한다. 대게 잡이 어선도 매일 아침에 항구로 들어온다.

대게들이 위판장 콘크리트 바닥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크기별, 품질별로 도열하면 경매가 시작된다. 손가락으로 입찰값을 표시하는 ‘수지 호가 경매’다. 상인들의 눈짓과 손짓이 바빠진다. 상인들이 손가락으로 입찰가를 정하면 경매인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상인의 번호를 불러 낙찰을 알린다.

식당에서든 위판장에서든 대게를 고를 땐 다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택해야 한다. 싱싱하지 않으면 살이 말라붙어 속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크기가 똑같다면 무겁고 다리가 긴 것을 고르는 게 좋다. 속이 훨씬 알차다. 요리는 회, 매운탕, 튀김 등 다양한데,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살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찜이 최고다. 게 다리를 떼어 내어 속살을 빼먹고 나중에 등딱지에 담겨있는 게 장(臟)에 밥을 비벼 먹으면 별미다.

대게는 바다 바닥이 깨끗한 모래톱으로 돼 있어야 몰려드는데, 밑바닥에 개흙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의 앞바다에서 잡힌 대게가 유독 살이 꽉 차고 담백해 최상품으로 친다는 게 영덕 주민들의 자랑이다.

강구항에는 풍물거리를 포함해 150개가 넘은 대게 전문점이 있는데, 가격은 한 마리에 1만원에서 18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15만원은 지불해야 상품을 맛볼 수 있다. 사실 영덕 대게가 아무리 별미라 해도 이 정도 가격은 일반 서민에겐 너무 비싸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할 때라면 강구항 위판장에서 경매가 끝난 대게를 그 자리에서 사는 것도 차선책이다. 5~10만원 정도면 3~4인의 한 가족이 맛볼 수 있는 적당한 양을 살 수 있다. 위판장 근처엔 대게를 쪄서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주는(5,000원) 가게도 있다.

강구항 북쪽의 축산면 경정리 차유(車踰)마을은 영덕군에서 지정한 대게 원조마을이다. 영덕대게가 이 지역의 특산물임을 알리기 위해, 영덕군은 1999년 이 곳에 대게 원조 마을 기념비를 세웠다. 마을에서 보면 북쪽에 죽도산이 바다로 툭 튀어나와 있는데,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죽도산의 대나무와 흡사하여 대게, 즉 죽해(竹蟹)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울진과 포항 주민들은 영덕의 ‘원조’ 지위를 인정치 않는 분위기다. 특히 울진 주민들은 원래 울진이 대게의 주산지인데 1930년대 교통 수단이 여의치 않던 시절, 인근에서 가장 큰 장이 서던 곳이 영덕이었기 때문에 영덕 대게가 더 알려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또 해방 후엔 대게를 통조림으로 가공하던 공장이 있던 영덕으로 모든 지역의 대게가 모여 들면서 영덕 대게라는 이름을 얻게 됐으니, 영덕은 대게의 집산지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구룡포에서 죽변 앞바다 사이가 '대게 벨트'
우리나라에서 대게가 많이 잡히는 곳은 구룡포에서 죽변항 앞바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세 개의 거대한 바다 속 섬이다. 후포항 앞바다 20km 해역에 있는 ‘왕돌잠’, 영일만 위쪽의 칠포 앞바다 9km쯤의 ‘무화잠’, 영덕 축산항 앞바다 7km쯤의 ‘신바위’가 그 곳인데, 합쳐서 ‘대게 벨트’라 불린다. 수심이 5~200m 정도의 대륙붕을 이루고 있는 이 곳은 양질의 모래가 바닥에 깔려있고, 한류와 난류가 만나 연중 10℃내외의 수온을 유지해서 대게가 대량 서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갖췄다.

결국 동해의 대게 벨트에서 잡은 ‘진짜’ 대게라면 어디서 잡았든지 맛은 거의 비슷하다는 게 미식가의 설명이다.

* 숙식 같은 영남권이 아니라면 1박 2일이 필요한데 이왕이면 강구항 주변의 숙박 시설을 이용해야 이튿날 아침에 항구 구경하기가 수월하다. 강구항엔 용궁민박(054-733-3938), 매일민박(054-733-4322), 에덴하우스(054-564-8560) 등 민박집이 수십 채가 있다. 항구엔 대게뿐만이 아니라 갖가지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도 많다. 항구와 가까운 삼사 해상 공원에도 모텔급 숙박 시설이 여럿 있다.

* 교통 수도권은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동해IC→7번 국도→삼척→울진→영덕 강구항(5시간30분 소요). 충청ㆍ영남권은 경부고속도로→대구-포항간 고속도로→7번 국도→영덕(대구에서 1시간30분 소요). 호남권은 88올림픽고속도로를 이용해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탄다(광주서 4시간 30분 소요).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입력시간 : 2005-01-26 16:38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