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득이는 神技, 퓨전베이스의 최고봉전통과 혁신을 관통하는 마력의 연주, 멀티아티스트의 역량 그대로 담겨

[문화비평] 마커스 밀러 라이브 앨범
번득이는 神技, 퓨전베이스의 최고봉
전통과 혁신을 관통하는 마력의 연주
멀티아티스트의 역량 그대로 담겨


2004년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던 ‘JVC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서 그 신기(神技)의 연주를 펼쳐, 수 많은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 그는 이 시대의 퓨전 재즈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베이시스트다. 마커스 밀러는 베이스는 물론 클라리넷과 색소폰, 키보드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멀티 플레이어일 뿐 아니라 작곡, 편곡과 프로듀스에 이르는 여러 분야에 걸쳐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는 다재 다능한 아티스트이다.

엄청난 힘으로 쥐어 뜯는 듯한 슬랩(slap)을 주특기로 하는 그의 연주는 수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며 대다수의 재즈 뮤지션들이 빛을 발하지 못했던 198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어 왔다. ‘베이시스트의 탈을 쓴 기타리스트’라는 어떤 이들의 평가처럼 마커스 밀러는 리듬 파트의 주 변주 악기로서의 역할만 하기 일쑤였던 베이스를 음악의 중심으로 옮겨 놓았다. 베이스의 리드 악기로서 활용은 자코 패스토리우스(Jaco Pastorius), 스탠리 클락(Stanley Clarke) 등이 선례를 보인 바 있지만, 마커스 밀러의 방식은 좀 더 특별해 보인다.

마커스 밀러 연주의 요체는 한 마디로 펑키와 R&B, 그리고 소울의 요소를 고루 포함하는 원초적인 리듬감을 바탕으로 한 고출력 베이스 사운드의 조화에 있다. 대체로 그의 곡들에서는 일반적으로 메인의 자리에 위치하는 기타가 리듬 파트로 물러나고 아주 큰 음량의 베이스 기타가 전면에 나선다. 사실 그의 연주는 보통 연주인이 어지간한 힘을 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스 기타의 두꺼운 기타 줄은 큰 소리를 내려면 엄청난 힘을 가해야 하고, 스피디하게 연주하고자 하면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기타 연주에서 하던 플레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이스 기타에서 해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그의 음악에 충분히 익숙해진 이들조차 들을 때마다 놀라게 될 정도로 탁월한 핑거링 덕택이라 할 수 있다. 그 놀라운 사운드를 듣다 보면 2001년 앨범 ‘M2’로 그래미를 거머 쥔 게 당연하다 못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앨범 'M2'로 2001년 그래미상 수상
1959년 6월 14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마커스 밀러는 어린 시절부터 R&B 곡들을 연주하며 음악에의 열정을 키웠다. 70년대에는 플루트 주자 바비 험프리(Bobbi Humphrey)나 드러머 레니 화이트(Lenny White) 등 유명한 재즈 뮤지션들과 활동을 했는데 그의 경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80년대, 전설적인 트럼펫 주자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 함께 했던 여러 프로젝트들이라 할 수 있다(사실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뮤지션이기도 하다).

당시의 작품들에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후기 걸작들인 ‘Tutu’(86)와 ‘Music From Siesta’(87) 등이 포함된다.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이나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 등과의 협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80년대 말에는 레니 화이트와 보컬리스트 마크 스티븐스(Mark Stevens)와 함께 소울 트리오 자메이카 보이스(Jamaica Boys)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90년대에는 ‘PRA’ 레이블을 통해 ‘The Sun Don't Lie’(93), ‘Tales’(94), ‘Live & More’(’98) 등을 발표하며 팬들과 평단으로부터 갈채를 받아왔다. 이 작품들은 국내에서도 연주자들과 일반 팬들에게 그의 이름을 확고히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의 탁월한 재능과 활발한 활동의 성과는 2001년, ‘M2’ 앨범의 그래미상(최우수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수상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생생한 사운드 고스란히 담아
그리고 ‘오피셜 부틀렉’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라이브 앨범 ‘The Ozell Tapes’는 마커스 밀러의 모든 역량을 단숨에 엿볼 수 있는 탁월한 작품이다. 사실 이 앨범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소위 ‘해적판’으로 불리는 불법 복제 음반의 유통이 자리하고 있다. 마커스 밀러는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앨범들이 해적판의 형태(공연장에서 무단으로 녹음된 음원을 사용한)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신이 직접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게 된 것이다.

2002년 봄에 가졌던 투어를 담은 이 더블 앨범을 제작하며 마커스 밀러 및 엔지니어인 데니스 톰슨(Dennis Thompson)이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라이브’라는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스튜디오에서의 ‘가공’을 일체 배제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라이브 앨범의 제작 과정에서 거치게 마련인 사운드의 보강을 위한 멀티트랙 믹싱이 없이, 공연장에서의 믹싱 보드에서 곧 바로 뽑아낸 생생한 사운드를 고스란히 담은 앨범이 탄생될 수 있었다.

‘부틀렉’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정규 라이브 앨범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는 이 앨범의 탁월한 점은 최상의 멤버들과 함께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마커스 밀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베이스는 물론 색소폰과 키보드 등 여러 악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재능은 각각의 곡들에서 충분히 살아 숨쉰다. 앨범에는 ‘Power’, ‘Lonnie’s Lament’, ‘Your Amazing Grace’, ‘Nikki’s Groove’ 등 그래미 수상작인 ‘M2’의 수록곡들이 먼저 다가온다.

귀에 익은 넘버들이 더 반가운 사람들도 있겠다.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고전을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한 ‘I Loves You Porgy’,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저 유명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게스트 보컬리스트 랄라 해서웨이(Lalah Hathaway)가 노래를 들려 준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했던 시절의 곡들을 19분여에 걸친 메들리로 들려주는 ‘Miles/Marcus Medley’ 등이 수록되어 있다. ‘Panther’, ‘Scoop’ 등 초기 명곡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김경진 팝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1-26 17:32


김경진 팝칼럼니스트 arzachel@seoulrecor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