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겨울 절집엔 풍경소리만 그윽하더라

겨울산사, 고향 가는 길에 풍경 소리 듣기 좋은 절집 6선
[주말이 즐겁다] 고즈넉한 겨울 절집엔 풍경소리만 그윽하더라

겨울 산사(山寺)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힘이 있다. 종교를 따져 무엇할 것인가.

눈 덮인 일주문을 들어설 때면, 거창하게 해탈까지는 이르지 못해도 쓸데없는 아집은 미련 없이 실어 보낼 수 있다. 고향간 김에 오랜만에 만난 정겨운 친지들과 가까운 절집을 찾아 그윽한 풍경 소리 들으며 새해를 설계해 보자. 때맞춰 하얀 눈까지 내린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 부안 내소사
꽃창살 문양도 눈밭에 핀 꽃송이

'서해의 진주'로 불리는 변산반도의 정신 세계를 지켜온 내소사(來蘇寺)는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겨울에 더욱 더 빛나는 절집이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에 눈꽃이 만발하다. 파란 나무숲과 하얀 눈의 조화가 아주 감동적이다. 흰 눈 내려 앉은 나지막한 돌담과 삼층 석탑도 정겹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낸다는 950살 먹은 '할아버지 당나무'도 온몸을 하얗게 단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소탈한 멋으로 잘 알려진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의 꽃창살 문양도 눈이라도 내린다면 눈밭에 핀 꽃송이가 된다. 기왕에 변산반도로 들어섰으니 반도 일주를 곁들여 보자.

겨울 바다를 품고 있는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밀물 때는 수평선에, 썰물 때는 널따란 갯벌에 마음을 빼앗긴다. 저녁 무렵이라면 낙조도 감상할 수 있다. 어디든 괜찮지만 변산반도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채석강(採石江) 일몰은 서해 3대 낙조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수만 권의 고서적을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이는 해안 절벽도 장관이다. 썰물 때면 바닷 바람과 파도가 오랜 세월 동안 빚은 해식 동굴도 구경할 수 있다.

* 숙식 : 내소가 가는 길목에 만나는 곰소항엔 싱싱수산(063-581-4801) 등 횟집이 즐비하다. 내소사 입구에 민박집이 많다.

* 교통 :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23번 국도(부안 방향)→3km→보안면 소재지(좌회전)→30번 국도(진서 방향)→5km→삼거리(우회전)→내소사. 줄포IC에서 20~30분쯤 걸린다.


▲ 부여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이 마지막으로 기댄 절집

조선 시대 철저한 아웃사이더 정신으로 일관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ㆍ1435~1493)이 마지막으로 몸을 기댄 절집이다. 깊은 산 속이 아닌데도 겨울 풍경은 제법 그윽한 맛을 풍긴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읽던 책 다 불태운 매월당. 이후 팔도를 떠돌다가 기력이 쇠잔해진 말년에 무량사(無量寺)에 들어온 그는 1493년 59세의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부도는 무량사 일주문 개울 건너에 있는 무진암 근처 부도밭에 있다. 매월당이 생존시 그렸다는 자화상이 경내에 보관되어 있다.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잘 표현한 수작이라는 평가다.

극락전(보물 제 356호)은 무량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겉에서 보면 2층 건물인데, 내부는 위층과 아래층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하나로 통해 있다. 현판의 글씨는 김시습 친필이라 한다. 극락전 앞에 세워진 5층석탑(보물 제 185호)에선 이 지역 탑의 전범이 된 정림사지 5층석탑의 양식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백제는 망했어도 석공의 유전자엔 백제의 혼이 면면히 흘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5층 석탑 앞에 있는 석등(보물 제233호)은 1971년 보수 공사를 할 때 지하에 매몰되었던 4각형 지대석가 발견된 덕에 원상대로 복구할 수 있었다.

* 숙식 : 절집 틔?사하촌에 된장찌개와 산채정식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승용차로 10분쯤 거리에 만수산 자연 휴양림(041-833-5231)이 있다.

* 교통 : 서해안고속도로 대천IC→36번 국도→보령→40번 국도(부여 방향)→성주터널→성주→외산 삼거리→좌회전→무량사 주차장. 대천IC에서 30~40분쯤 걸린다.


▲ 여주 신륵사
'여강 백릿길'에 울리는 그윽한 풍경소리

영동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귀성객이 들르기 수월한 여주의 신륵사(神勒寺)는 독특한 재질의 탑들과 남한강변에 자리잡은 덕에 전망 좋은 정자가 돋보이는 절집이다. 남한강은 조선시대까지만 지금의 고속도로나 철도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이 남한강 물줄기를 국도(國道), 곧 '나라의 길'이라 했다.

그 물길 중 나루터가 열두 군데나 있었다는 여주를 대표하는 절집 신륵사는 뜰 앞으로 여강 물길이 흘러가고 있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신라 때 창건된 이 절집은 조선시대에 세종의 능을 이장할 때 왕실의 원찰이 되면서 크게 중흥했다. 유서 깊은 천년고찰답게 신륵사엔 나라의 보물이 일곱 점이나 있다.

그 가운데 독특한 재질의 탑이 단연 돋보인다. 흔히 보는 화강암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우아하게 다듬은 조선 전기의 다층석탑(보물 제225호)과 현존 유일의 고려시대 전탑인 다층전탑(보물 제226호)이 그것이다. 또 절 동쪽 강변 풍광 좋?자리 나옹선사를 화장했던 곳에 세워진 아담한 삼층석탑 옆에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정자가 있다. 여강과 어우러진 소박한 정경이 돋보인다. 한편, 신륵사 오가는 길에 만나는 왕대리의 영릉(英陵)은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 숙식 : 여주 북서쪽 이포대교 옆의 '천서리'는 막국수로 유명한 마을이다. 이포대교가 생기기 전부터 막국수를 내놓았던 봉진막국수(031-882-8300)가 원조로 꼽힌다. 남한강변을 따라 숙박 시설이 많다.

* 교통 : 영동고속도로 여주IC→37번 국도→여주→여주대교→신륵사. 여주IC에서 10분 소요.


▲ 무주 백련사
구천동 33경에 안긴 새하얀 연꽃

무주 백련사

유명한 무주구천동 33경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절집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머물던 곳인데,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왔다 하여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 했다고 한다. 매표소가 있는 삼공리 덕유산 입구부터는 내구천동이다.

달빛 아래서야 제 빛을 드러낸다는 월하탄 구경하고 인월담 – 사자담 - 다연대 지나면 눈도 얼음도 점점 많아진다. 산문(山門)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일주문 한쪽엔 구천동 절집의 내력을 증거하는 부도밭이 눈 속에 정겹다. 이어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이속대(離俗臺) 지나면 백련사(白蓮寺) 풍경 소리에 마음이 정갈해진다. 절보다는 이렇듯 매표소에서 백련사까지 오가는 길에 만나는 계곡 정취가 더 없이 좋다.

백련사까지 갔다면 눈꽃과 서리꽃이 모두 아름다운 덕유산(1,614m)을 오르는 것도 괜찮다. 향적봉에서 중봉 사이의 구상나무와 주목 군락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환상의 설경 지대. 그러나 산길이 제법 험하니 겨울 산행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삼공리~백련사~향적봉~삼공리 회귀코스는 왕복 5시간 30분쯤 걸린다.

* 숙식 : 무주의 별미는 금강에서 잡은 피라미, 모래무지, 빠가사리 같은 민물고기를 재료로 해서 걸쭉하게 끓여낸 어죽. 무주군청 근처의 금강식당(063-322-0979)이 유명하다. 1인분에 5,000원. 집단 시설 지구가 있는 삼공리에 여관과 민박집 등 숙박 시설이 아주 많다.

* 교통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무주IC→19번 국도(구천동 방향)→적상→사산리 삼거리→49번 지방도→치마터널→37번 국도→삼공리→매표소. 무주IC에서 30분 소요.


▲ 평창 월정사
한없는 행복해지는 전나무 숲길도 좋아

평창 월정사

오대산 월정사(月精寺)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부처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그러나 6ㆍ25전쟁 중에 국보급 전각은 모두 불타고 신라 범종도 녹아 영원히 사라졌다. 다행히 돌로 만든 팔각 구층 석탑(국보 제48호)과 석조 보살 좌상(보물 제139호) 등이 남아있다. 월정사 일주문 주변의 울창한 전나무숲이 일품이다.

월정사를 벗어나면 산길은 맑은 계류를 끼고 상원사(上院寺)로 이어진다. 8km쯤 되는 이 길은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상원사 목조 문수 동자 좌상(국보 제221호)은 세조가 목욕중에 만난 동자승의 인상 착의를 바탕으로 조각된 것이라 한다. 계단 한쪽의 고양이 조각상은 자객으로부터 세조를 구해 준 인연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국내 최고(最古)의 범종(국보 제36호)도 빼놓지 말고 살펴보자. 종소리도 맑고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이 매우 사실적이다.

* 숙식 : 진부면 소재지의 부림식당(033-335-7576)은 오대산 주변에서 채취한 산나물 음식으로 유명하다. 산채백반 1인분 7,000원. 오대산 입구에 민박집 등 숙박 시설이 많다.

* 교통 : 영동고속도로 진부IC(월정사 방향)→6번 국도→8km→446번 지방도→4km→월정사. 진부IC에서 20분쯤 소요.


▲ 봉화 청량사
연꽃 구름으로 지은 청정 도량

낙동강 상류에 있는 청량산((淸凉山ㆍ870m)의 열 두 암봉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청량사(淸凉寺)는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정도량'이라는 자랑이 과장되지 않은 절집이다. 최근 불사를 했음에도 분위기가 아주 정갈하다. 663년(신라 문무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유리보전(琉璃寶殿ㆍ경북 유형 문화재 제 47호)은 모든 중생의 병을 다스리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 부처님은 종이를 다져 만든 '지불(紙佛)'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전쟁 때 불에 타서 폐사가 된 문수전의 문수보살과 명부전의 지장보살을 옮겨 약사여래불 좌우에 모셨다. 현판의 글씨는 청량산으로 피신을 왔던 공민왕의 친필이라 전한다. 금탑봉에 제비집처럼 자리잡은 응진전(應眞殿)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암자인데, 축융봉을 바라보는 전망이 아주 좋다. 청량사에서 응진전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어풍대(御風臺)는 '산은 연꽃이고, 절터는 꽃술'이라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최적의 감상 포인트.

청량산은 명필의 석학과 인연이 깊다. 고운대, 독서당, 총명수 등은 최치원의 전설이 얽힌 유적지다. 김생이 10년간 글공부하던 김생굴엔 9년 공부한 후 하산하던 김생에게 부족함을 일깨워 줘 10년을 채우게 만들었다는 청량봉녀의 전설이 전한다. 청량산과 가까운 안동에 살던 퇴계 이황도 청량산의 아름다움에 기댄 학자다. 청량사 아래의 오산당(吾山堂)은 퇴계가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또 축융봉엔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쌓은 청량산성과 공민왕이 은신한 공민왕당 등 많은 유적지가 있다.

* 숙식 : 청량사와 가까운 봉성면은 돼지 숯불구이로 유명한 곳이다. 소나무 숯으로 굽기 때문에 고기에서 솔향이 묻어 나온다. 두리봉식당(054-673-9037) 등 숯불구이집이 많다. 청량산 입구의 식당에서는 민박도 할 수 있다.

* 교통 : 중앙고속도로 풍기IC→5번 국도→영주→36번 국도→봉화→918번 지방도→봉성→명호→35번 국도→청량산. 풍기IC에서 1시간 소요.

글ㆍ사진/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5-02-02 18:14


글ㆍ사진/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