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의 기운 뿜는 상서로운 향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향나무
청정의 기운 뿜는 상서로운 향

향(香)나무란 이름은 나무가 내어 놓는 향내 때문에 붙었다. 대부분의 나무에서 향기가 좋다 하면 백리향처럼 꽃향기가 유별나거나 모과나무처럼 과실이 향그러운 경우를 가리키지지만, 향나무는 목재 자체에서 나는 향기가 특별히 좋다. 향나무의 향기는 구천의 높이 까지 간다고 하니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향이다. 사실 줄기 뿐 아니라 잎과 수액에서도 향기가 나는데 이 향나무의 독특한, 싱그러우면서도 강렬한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이는 헛된 수고였음을 곧 깨달았는데 향나무는 그 나무 토막으로 향을 만드는 것이니, 그 냄새야말로 향 그 자체이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의 침엽수이며 큰 키 나무이다. 어린 나무들은 원뿔 모양으로 평범하게 자라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여러 환경 조건에 따라 가지 각색으로 개성 있는 자태를 만들어 간다. 나이가 들수록 겹겹이 비틀려 그 모양들은 자못 운치 있다. 가지 또한 변화가 있어 맨 처음 난 가지는 초록색이나 이 년이 되면 붉은 갈색이 됐다, 다시 또 일년이 지나면 자주빛이 나는 진한 갈색이 되고 오래 오래 묵으면 잿빛이 도는 흑갈색이 된다. 한 15년쯤 지나면 줄기에서는 껍질이 조각 조각 벚겨져 이 나무의 또 하나의 특징이 되고 있다.

향나무는 잎도 두 가지로 달린다. 5년 이상쯤 나이가 먹은 가지에는 얇고 작은 잎들이 비늘처럼 포개어져 달리는데 이를 인편엽이라고 하고, 손에 닿아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어린 나뭇가지에는 바늘처럼 끝이 뾰족하여 찔리면 아픈 침엽이 달린다. 나이가 들수록 모나지 않게 둥글어 지는 것은 사람이나 향나무나 마찬가지 인가 싶다.

향나무도 꽃이 핀다. 4월이 되면 여느 꽃나무처럼 화려한 원색의 꽃잎은 없어도 내실 있는 작은 꽃들이 1cm쯤 되는 꽃차례에 달리는데 그러다 보니 꽃이 핀 것을 보고도 그것이 꽃인줄 모르는 이들도 많다. 열매는 꽃이 핀 그 해 익지 않고 이듬해에 익는다. 모가 나있긴 하지만 그래도 둥근 열매가 조각조각 벌어 지고 그 속에는 하나에서 많게는 6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향나무는 예로부터 청정(淸淨)을 뜻하여 귀하게는 궁궐이나 절, 좋은 정원에는 으레 심었고 같은 이유로 우물가나 무덤가에도 향나무 한 그루쯤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풍습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옛 사람들은 샘물이나 우물가에 향나무를 심으면 향나무의 뿌리가 물을 깨끗이 한다고 믿었다. 물 맛이 좋고 향기로워질 것을 기대했으며 또 향나무가 늘 푸르듯 물도 마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향나무를 심었으리라.

그러던 것이 해방되고 한동안 향나무는 일본 수종으로 잘못 알려져 수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향나무는 분명히 이 땅에서 오랜 세월을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 온 우리 나무이다. 사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각 집마다, 학교마다 선택의 여지없이 심게 되는 나사백(가이스까 향나무)라는 일본산이다. 이 종류는 바늘 잎은 없이, 비늘잎만 달린 것으로 구별하면 된다.

뭍에서 만나는 향나무는 거의 심은 나무들이지만 울릉도에 가면 향나무 자생지를 볼 수 있다. 손에 닿는 곳의 나무들은 이미 수난을 당하였고 바닷가 암벽 사이 사이에서 살아 남은 향나무 군락들이 있고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옛부터 향나무로 향을 피웠던 것은 이 향이 나쁜 기운을 물리쳐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설날을 맞으며 하는 향나무 이야기가 모든 분들에게 덕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이 바로 향기를 내는 존재로 더불어 지내는 을유년었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02-23 11:19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