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슈워츠 지음, 우태정·이주명 옮김 / 필맥 발행 /1만4,000원

[출판] 이미 시작된 20년 후
피터 슈워츠 지음, 우태정·이주명 옮김 / 필맥 발행 /1만4,000원

바위로 가득한 험한 산길을 오르내릴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잘못 발이라도 삐끗하면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험한 바위산이라도 나는 듯이 가볍게 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익숙하고 편안한 균형 감각은 여러 번 산을 오르내리며 몸에 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바위를 더듬거릴 때 그들은 두려움 없는 날렵한 몸짓으로 성큼 성큼 앞서 간다.

우리가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두려움을 갖는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서다. 만약 앞에 놓인 것들을 미리 알고 있다면 닥쳐 오는 위험 요소들을 능숙하게 피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미래에 벌어질 현상들을 상상하면서 장기 전망과 대책을 세우기 위해 현재를 분석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미래 예측 관련 조사 자문 회사인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설립자 피터 슈워츠는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활용하여 우리 앞에 벌어질 ‘피할 수 없는 놀랄 일들(inevitable surprises)’을 하나 하나 펼쳐 보여 준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지금으로부터 25년 후, 2030년의 세상이다. ‘이미 시작된 20년 후’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예측하는 미래의 씨앗은 오늘 이미 뿌려져 있다. 조금만 관찰력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 보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커다란 변혁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저자는 인류가 지금까지 두 차례의 대변혁을 겪었다고 말한다. 지구 기후가 온난해 지면서 정착·농업 사회로 전환되었고 산업혁명 등 기술 발전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세 번째 대변혁의 시기를 앞두고 있다. 더욱이 이번 대변혁은 수천 년,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과거의 대변혁과 달리 20~30년의 짧은 시간 안에 닥쳐올 것으로 보인다. 오늘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 생전에 피할 수 없는 놀랄 일들과 맞닥뜨려야만 한다.

이미 수많은 징조들이 눈에 띤다. 의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 연장으로 이어져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게 분명하다. 30년쯤 후에는 70대와 40대를 외모로 구분하기 힘들 게 되고, 풍부한 경험과 유연한 판단력을 지닌 60대 이상 노년층이 기업들이 선호하는 핵심 경제 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 북미, 동아시아, 유럽 등 기회의 나라로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대규모 이주민의 물결은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여 하나의 융합된 사회를 창출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정치·사회적 분열을 일으킬지 모른다. 특히 유럽에서의 이슬람 이주민 증가는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인자로 손꼽힌다.

여기에 9.11 테러 이후 국제 질서를 무시하고 단독 행동에 나선 미국이 ‘불량배 슈퍼 파워’로 등장하면서 세계 질서가 새롭게 개편되고 있다. 미국이 정치적 독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세계의 미움을 받는 고립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유럽이 미국을 견제하면서 과거 냉전 시대와 유사한 대립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낙관적 전망으로는 생산성 증대, 세계화, 경제 활동의 인프라 혁신이 가져올 40년 장기 호황에 대한 기대다. 이를 통해 세계는 지금보다 1.5배 이상 부유해지고 전 세계에 걸쳐 중산 계층이 크게 증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도 정치적, 경제적 이해 관계로 얽힌 국가간 컨소시엄, 테러와 역병의 창궐 등 세계적 무질서와 혼란,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값싼 대체 에너지 개발, 과학 기술의 약진 등 필연적인 변화가 코 앞에 다가 와 있다.

변화의 규모는 대단히 크고 파괴적일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놀랄 일에 부닥칠 경우 사람들은 부정하거나 방어적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다. 허나 이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태도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인정하고 혁신적인 전략과 대안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통합적 판단 능력을 키우며 변화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도록 뚜렷한 방향감각도 지녀야 한다. 이것이 세계와 나라와 기업과 가정과 개인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지배하며 현명하게 미래를 맞이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2-23 14:17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