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적' 퇴치하는 肝파수꾼간질환은 40대 남성의 주요 사망원인신속한 검사와 치료로 간암 발병율 감소

[클리닉 탐방] 고려대 구로병원 <간질환 센터>
'중년의 적' 퇴치하는 肝파수꾼
간질환은 40대 남성의 주요 사망원인
신속한 검사와 치료로 간암 발병율 감소


평소 ‘건강 체질’이라고 동네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이모(58ㆍ여)씨는 2년 전 돌연 간암 판정을 받았다. B형 간염에 걸린 것을 알았으면서도 대수롭지않게 여겨 수년간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 간염이 만성 간염으로 옮겨가고, 간경변을 거쳐 결국 1.5㎝ 크기 암 덩어리로 자라난 것이었다.

간질환으로 험한 말년을 보내던 아버지의 모습이 퍼뜩 떠올라 ‘아뿔사’를 외친 이 씨였다. 전문의 권고대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약 두 가지를 2년간 꾸준히 복용한 이 씨는 암 덩어리가 사라지자 완치된 줄 알았다. 하지만 암세포는 또 다른 곳에서 꿈틀댔다. 가슴이 뻐근하고 팔이 끊어지는 아픔을 참아내면서 암세포를 태워 없애는 고주파 및 레이저 시술을 끝마치고 나서야 이 씨는 죽음의 공포를 떨쳐낼 수 있었다.

예부터 ‘간뎅이가 부었다’고 하고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도 한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 간 검사는 빼놓지 않는다. 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뒤집으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간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간의 기능을 열거하자면 영양소 처리, 독소 해독, 혈액 응고 물질과 콜레스테롤 생성 등 500여 가지가 넘는다.

간염, 간경변, 간암으로 대표되는 간질환은 가히 ‘공공의 적’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를 이끄는 중추 세대로서,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40대 중년 남성을 집중적으로 괴롭히기 때문이다. 한국인 40대 남성 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간질환이다.

간염 바이러스가 간질환의 주범
간질환을 일으키는 주범(主犯)이 술(알코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간염 바이러스다. 간암이나 간경변도 발병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간염 바이러스, 그 중에서도 B형 간염 바이러스에서 비롯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성 간염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B형과 C형이다. A형은 급성 간염만 일으키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된다. 급성은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한 두어 달 치료하면 낫고 이후 항체가 생겨 다신 걸리지 않게 된다.

반면 만성 간염은 짧게는 6개월 이상, 길게는 10년 이상 끌면서 간의 곳곳에 생채기(염증)를 내고,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악화하여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성인의 7% 정도가 B형 간염에, 1% 정도가 C형 간염에 각각 걸려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간질환 진료센터의 이창홍 교수는 “항바이러스 제제가 잇따라 개발되고, 1985년부터 B형 간염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간염 발병률이 지난 20년간 격감했다”며 하지만 “백신 접종 혜택을 받지 못 한 30대 이상의 B형 간염 보유율은 5~8%로 큰 변화가 없고,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는 최근 되려 급증하고 있다”고 간질환 발병 실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

이 병원 간질환 센터는 월 평균 2,500명이 내원하고, 매월 치료하는 간암 환자 수가 270명이 넘는 대규모 치료 센터. 손꼽히는 B형 간염 권위자 이 교수와 C형 간염 전문가 변관수 교수 등이 포진, 각종 검사에서 치료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을 2~3일 내에 신속하게 끝내주어 ‘간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교수는 “간염은 이제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단언한다. 치료 효과가 좋고 내성에도 강한 항바이러스 제제가 많이 나와 있어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증상의 악화를 막거나 또는 유예시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B형 간염은 백신 접종의 정착으로 앞으로 10~20년 후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C형 간염 치료율도 부쩍 높아졌다. 2년 전 첫선을 보인 ‘페길레이티드 인터페론(pegylated interferon)’의 치료성적이 아주 좋다.

이 교수는 “페길레이티드 인터페론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꾸준히 복용한 환자의 50~80%가 뚜렷한 증상 개선 효과를 보였다”면서 “간암 발병률도 크게 감소시킨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인다. 반면 이 교수에 따르면, 알코올성 간질환이 새로운 ‘복병’이 되고 있다.

이 교수가 1999년 6월부터 1년간 전국 18개 병원의 만성 간질환 환자 2만96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B형 간염(66.6%)에 이어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가 14.5%로 2위를 차지, C형 간염(9.4%)을 벌써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알코올성 간질환은 증상이 바이러스성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뾰족한 치료제도 없고, 재활 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아주 낮은 상태”라고 말한다. ‘간암은 고치기가 힘辱蔑?玆?한다. 간암 환자 10명 중 8~9명은 간경화증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간경화의 상태가 간암 치료 방법을 사실상 결정한다”며 “하지만 간암이라도 일찍 발견 한다면 완치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장기적인 혈청·초음파 검사로 조기진단
이 교수에 따르면, 간암 치료 방법은 암세포의 크기, 수, 경직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고주파 열치료 - 간동맥 화학 색전술 - 절제 수술 순으로 많이 이용된다. 간 기능이 비교적 원활하고 한 개의 암 덩어리가 간 표면 가까이 있는 경우 등은 절제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절제가 가능한 경우는 전체의 10~20%에 그친다.

간경변증이 없거나 암 덩어리 수가 3개, 최대 크기가 3㎝ 이하일 경우에는 작은 구멍을 뚫은 뒤 고주파를 쏴 암세포를 태워 없애는 ‘고주파 열치료’를 주로 시술한다. 간경화증으로 절제가 쉽지 않고 또 암 덩어리가 3개가 넘을 경우엔 암세포 혈관을 차단하여 아사(餓死)시키는 ‘간동맥 화학 색전술(TACE)’을 쓴다. 최근 간 이식 기술의 발달로, 간 기능이 크게 떨어져 생명 유지가 곤란하거나 복수ㆍ황달 등 합병증을 동반한 말기 간경변증 환자들에게는 간이식 시술을 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이 교수는 “간은 재생력이 아주 뛰어나, 전체의 70%가 망가져도 별 증상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간염 보유자나 간암 발병이 우려되는 경우 1년에 두 번 정도 혈청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조기 진단을 권한다.

◇ 다음호에는 <간이식>편이 소개됩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입력시간 : 2005-02-24 17:20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