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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즐겁다] 충주 남한강
역사를 품은 유장한 물줄기
강물따라 떠나는 겨울 드라이브, 민물고기 요리도 별미




남한강 수운의 가항종점이었던 목계나루는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인파로 북적거렸다.



얼었던 땅이 녹는다는 절기인 우수를 지나면 남한강 물줄기도 기지개를 켜며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겨울의 끄트머리에 떠나는 충주 여행은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점의 머리에 솟은 탄금대(彈琴臺)부터 시작한다.

우륵이 가야금 타던 탄금대
탄금대라는 이름은 신라 진흥왕 때에 가야의 악성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嘉實王)과 신라 진흥왕 때 활약한 가야금의 명인이다. 우륵은 탄금대에서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법지에게는 노래를,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치며 가야의 예술혼을 신라에 전수했다. 이순신 장군의 내면 세계를 다룬 ‘칼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의 후속작인 ‘현의 노래’는 바로 예술을 위해 조국을 버리고 신라로 망명한 우륵의 예술혼을 다룬 작품이다.

탄금대는 가야금 뜯는 소리만 들리던 곳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申砬ㆍ1546-1592) 장군은 이곳서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군과 맞섰다가 패배했다. 믿었던 신립이 문경 새재를 막지 못하고 탄금대 전투에서 패하자, 선조는 결국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흔히 탄금대라 하면 열두대를 일컫는데, 이는 전투 당시 신립 장군이 계속된 전투로 뜨거워진 활의 열기를 식히고자 열 두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바위들이다. 30~40분쯤 발품을 팔면 탄금대 둘레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남한강을 지나는 나그네를 말없이 지켜본 탑평리7층석탑.
5세기 후반에 세워진 중원고구려비는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비다.

탄금대에서 나와 강변 도로를 타고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금면 탑평리 강변에 우뚝 솟은 석탑을 만난다. 신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으로도 불리는 중원탑 평리 7층 석탑(국보 제 6호)이다. 탑의 높이는 14.5m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데, 흙을 돋운 언덕 위에다 세웠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거대하게 보인다. 전문가들은 건립 시기를 통일 신라 시대인 8세기 후반께로 보고 있다. 석탑 옆엔 충주와 주변 지역에 산재한 유적ㆍ유물과 민속 자료를 모아 놓은 충주박물관(043-855-4429)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탑과 가까운 용전리 선돌마을은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비석을 만날 수 있는 곳. 마을 입구에 서있는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가 그것이다. 비석의 크기는 중국 집안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3분의1쯤 되는데,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만든 솜씨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1972년 홍수로 쓰러진 뒤 1979년 발견되기 전까지 마을의 빨랫돌로 쓰였던 탓에 비석면의 글자가 보이지 않아 해독이 어려웠지만,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판독한 결과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와 고구려 관직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문가들은 고구려 장수왕이 전성기인 5세기 후반에 한강 상류까지 영역을 넓히고 국경을 표시한 비석임을 밝혀냈다.

스산한 바람만 부는 목계장터
신라와 고구려를 지난 남한강 물줄기는 장미산성을 크게 휘돌아 흐르며 목계나루로 이어진다. 목계나루는 강물이 말라붙은 갈수기에도 언제나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남한강 수운의 가항종점(可航終点)이었다. 조선 시대에 재정 확보를 위해 거둔 쌀과 베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인 가흥창(可興倉)도 이 곳에 있었다.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목계나루엔 인천항에서 소금, 건어물, 젖갈류, 생활 필수품 등을 싣고 온 황포돛배가 수십 척씩 붐볐다. 이런 물건들은 내륙 지방인 충청도와 강원도, 그리고 백두대간 너머 경상도의 문경과 상주 각지로 팔려 나갔다. 당시 뱃일하는 인부만도 500여 명이나 되었다 하니, 나루와 이어진 목계장터는 언제나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모두 옛 일에 불과하다. 위용을 자랑하던 조창은 모두 허물어졌고, 주변엔 주춧돌 몇 개와 깨진 기왓장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다. 강나루의 흔적마저도 모래를 퍼내고 강 언덕에 축대를 쌓으면서 형편없이 변했다. 또 늘상 인파로 북적거렸을 목계장터는 지금은 골동품 가게와 수석 가게들만이 을씨년스러운 풍경화를 연출할 뿐이다.

목계나루에서 20리쯤 떨어진 노은면 연하리에 태를 묻은 신경림 시인에게 목계나루는 소중한 추억의 장소다. 시인은 광복 이듬해인 초등학교 4학년 때 목계나루 솔밭으로 소풍을 갔다가 목계장터를 보곤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목계나루는 제법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시인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마침내 ‘목계장터’라는 명시로 열매를 맺는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로 시작하는 이 시는 구성진 어조에 자연과 인간과 삶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나루터 언덕엔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를 판화가 이철수의 글씨로 새긴 시비가 서 있다.

* 별미 목계나루의 참매자 조림은 남한강변에서 맛볼 수 있는 겨울철 별미다. 수온이 낮아지면 고기의 육질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참매자의 표준어는 참마자. 충청도 등지에선 참매자라고 부른다. 잉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몸 길이 15~20cm에 이른다. 충주에선 남한강 목계나루 주변에서 많이 잡힌다. 목계장터 주변에 참매자 조림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목계장터 안쪽에 자리잡은 실비집(043-852-0159)은 조림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한 냄비(2~3인분)에 2만원.
* 교통 지난해 12월 완전히 개통된 중부 내륙 고속 도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충주IC→3번 국도→충주→탄금대→중앙탑→중원 고구려비→목계나루. 북충주IC로 빠져 나오면 목계나루부터 역코스로 둘러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 충주까지 1시간30분~2시간 소요.
* 숙식 충주 시내에 호텔과 모텔 등 숙박 시설이 많다. 목계나루에서 승용차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가금면의 봉황리자연휴양림(043-850-5881)은 한적한 산골 정취가 있는 통나무집이다.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


입력시간 : 2005-02-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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