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불꽃 타오르는 봄의 수묵화천년고찰과 차밭에 내려앉은 봄볕, 흐드러진 동백에 처연함마저
[주말이 즐겁다] 월출산 무위사 돌불꽃 타오르는 봄의 수묵화 천년고찰과 차밭에 내려앉은 봄볕, 흐드러진 동백에 처연함마저
황토 끝없이 펼쳐진 남도는 봄이 가까워 오면 더욱 그리워지는 땅이다. 해남ㆍ강진ㆍ영암ㆍ장흥ㆍ보성…. 한겨울에도 어디서나 붉은 동백을 만날 수 고을들이니, 봄은 더 말해 무엇 하랴. 남녘에서 훈풍이 불기 시작하면 이 고을들은 사방이 봄볕 천지다. 봄을 찾아 남도 땅의 맹주인 월출산(809m)으로 간다. 그 남쪽 기슭엔 천년고찰 무위사와 월남사지, 금릉경포대계곡의 동백 그리고 언제나 푸른 차밭이 있기 때문이다.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비슷한 풍경만 펼쳐지는 남도땅. 그러나 영암과 강진 사이에 솟은 월출산(809m)을 보면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진다. 거친 암봉들로 이루어진 월출산은 파란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돌불꽃’이다. 옅은 봄안개에라도 피어 오른 날이면 아름다운 수묵화가 펼쳐진다.
월출산 봄안개에 포근히 안긴 무위사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용마루까지 측면벽이 삼각형으로 된 맞배지붕의 미학이 넘쳐 난다. 또 맞배 지붕은 측면 구조가 노출되므로 그 미관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전문가들은 ‘조화로운 면 분할로 단정한 맛을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극락보전 한쪽, 산신각과 나란히 자리한 자그마한 당위에 모셔진 석조 미륵불이 이채롭다. 둥글납작한 얼굴에 두툼한 입술에서 풍기는 인상은 마치 마음씨 좋은 동네 아줌마 같다. 극락보전 위쪽 산자락으론 오솔길이 나있는데, 제법 호젓해서 새소리 들으며 산책하는 맛이 좋다. 붉은 꽃을 피운 동백나무도 드문 드문 보인다. 무위사를 나와 월남사지로 가기 위해 호젓한 동쪽 언덕을 넘다 보면 널따란 차밭이 반긴다. 한국 제다 업계의 선두주자인 ‘태평양 다원’에서 운영하는 차밭인데 면적이 무려 20여만 평에 이른다. 우리가 흔히 설록차라고 부르는 차가 여기서 생산된다. 부드러운 곡선과 푸르름이 돋보이는 이 차밭은 월출산 암봉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월출산 주변은 전통적으로 차의 명산지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영암의 월출산을 비롯해 나주ㆍ강진ㆍ무안ㆍ함평 등에는 작설차, 고흥ㆍ보성ㆍ순천 등에는 차가 산출된다”고 기록할 정도로 예전부터 차로 명성을 드날렸다. 특히 도갑사, 무위사, 월남사지, 경포대 계곡 주변은 여느 지역에 비해 차나무가 많이 야생하고 있으며 한국전쟁 전까지 차를 제조하는 방법도 전수된 곳이다. 차밭을 감상하고 언덕을 넘어서면 월남사지(月南寺址)다. 이쪽에서 보면 월출의 돌불꽃은 천불(千佛)이 된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산줄기엔 월출의 웬만한 봉우리들은 모두 명함을 내민다. 그 천불의 품에 안겨있는 월남사지는 고려 때 진각국사가 창건했고, 임진왜란 때 주변의 절들이 불탔을 때 폐찰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역사는 알 길이 없다. 대숲과 동백나무 그늘엔 상처 입은 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와 월남사지삼층석탑(보물 제298호)만이 이 빈터를 지켜왔다. 월남 마을은 지금이야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지만, 조선 시대까지만 해?역이 자리한 마을이었다. 조선 시대에 강진과 영암을 오가던 옛 길이 지금 13번 국도가 뚫린 풀치재가 아니라 풀치재와 천황봉 사이의 누릿재(황치)였는데, 해남 우수영(右水營)에서 한양을 가려면 강진 월남원(月南院)~누릿재~영암~천안~한양으로 이어 지는 ‘해남로’를 지났다. 그래서 제주도로 유배 가던 추사 김정희와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이 길을 따라와 누릿재를 넘었던 것인데, 당시 다산은 ‘월남원(月南院)’에서 월출산을 바라보고 한양을 그리는 시를 짓기도 했다. 월남원이 바로 현재의 월남리다.
금릉경포대 계곡은 동백꽃 세상 매표소를 지나 골짜기 안으로 들어갈수록 많아지던 동백나무는 1km쯤 거리의 깊숙한 계곡 중간쯤에서 절정을 이룬다. 꽃이 만개한 동백나무 아래에 앉아 봄이 오는 소리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기까지는 일반 여행 복장으로도 산책이 가능하지만, 더 오르려면 반드시 산행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 여름 피서철이면 이 곳도 꽤나 혼잡하지만 봄철엔 호젓해서 좋다.
입력시간 : 2005-03-0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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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