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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뺄셈의 삶에서 찾는 진정한 행복
슬로 라이프 / 쓰지 신이치(이규) 지음 / 디자인 하우스 발행 / 9,500원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실 가스 감축을 목표로 2월 16일 교토 의정서가 공식 발효됐다. 그러나 미국은 기후협약에서 탈퇴하면서 교토의정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앞으로 20년간 발전소 건설을 계속할 것이며 알래스카 자연보호구역 내에서의 석유 개발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가 살고 있는 미국은 전 세계 자동차의 32퍼센트를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22퍼센트를 뿜어 낸다.

온실 가스 감축이라는 당면 과제를 미국이 외면한 것은 환경보다 경제 논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가들이 교토의정서 발효로 어떤 경제적 득실을 얻을 것인지 계산기부터 두드리는 게 현실이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날로 더해가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남보다 빠른 성장을 모토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대 미덕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허나 다행히 지구촌 일각에서는 앞만 보고 달려 가는 대신 옆도 좀 살펴보고 가끔 에둘러도 가보자며 느림의 철학을 실천하는 무리들이 조용히 태동하고 있다. 날로 황폐해 지는 개인과 사회, 지구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느리고 소박한 삶을 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요즘 널리 유행하는 ‘웰빙(well-being)'과 유사한 개념 같지만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웰빙’이 개인 각자가 잘 먹고 잘 사는 생활 방식 개념에 머무는 데 비해 ‘슬로 무브먼트’는 남과 더불어 잘 사는 법, 모든 생명 공동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태도를 설득한다. 개발과 파괴를 동반해 온 경제학도 이제는 생태학적 관점에 입각한 에코 이코노미(eco - economy)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 슬로 무브먼트의 입장이다. 남쪽의 희생을 발판으로 북쪽의 성장을 꾀하며 빈곤을 심화시키는 세계화 바람도 거슬러 내야 할 중요한 난제다.

일본 메이지가쿠잉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인 저자는 한국계 일본인으로 저명한 환경 운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 문법을 무시한 브로큰 잉글리시, ‘슬로 라이프’를 세계적으로 범용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슬로 라이프란 풍요로운 자연에 기반을 둔 친환경적, 생태 시간적 삶이다. 이런 느림의 철학은 개인적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세상사 전반에 두루 통용된다.

저자는 슬로 라이프란 용어가 널리 알려지면서 기업들의 상품화 전략에 이용당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이라든가 ‘지속 가능한’, ‘글로벌에 맞서는 로컬’ 등 슬로 라이프가 껴안고 있는 근본 개념들은 간과되기 때문이다.

슬로 라이프를 위해 이런 저런 상품을 사라며 기업들은 덧셈의 발상으로 유혹하지만, 진짜 슬로 라이프는 뺄셈의 방식으로 사는 삶이다. 이것 없이 어떻게 살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을 주변에서 하나씩 줄여 나가는 생활 양식인 것이다. 바로 수년전까지만 해도 핸드폰 없이도 잘 살아 왔다는 것을 한 번 돌이켜 보자.

꼭 이러해야 한다는 규칙이나 정해진 길이 슬로 라이프에는 없다. 그저 자신의 삶에서 빠름보다 느림을 즐기고 경쟁 대신 어울림을 고려하며 각자 처한 상황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적용하면 된다. 아주 조금만 불편해 질 용기가 있다면 누구든지 슬로 라이프를 수용할 수 있다.

일회용품을 지양하고 전력과 화학 물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생활에서 비켜나 비전화(非電化) 생활을 즐기는 것, 슈퍼에서 물건을 살 때 제품 설명서에 눈길 한 번 주며 친환경 제품을 골라 쓰는 사소한 관심, 이런 개인들의 노력과 연대가 모여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슬로 라이프와 유사한 미국 로하스(LOHAS)족들의 생활 태도가 많은 기업들로 하여금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저자는 슬로 푸드, 슬로 워터, 슬로 머니, 언플러그, 컬처 크리에이티브, 신체 시간, 엘리펀티즘 등 슬로 라이프의 개념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70가지 키워드를 짤막한 에세이들로 풀어 냈다. 정신없이 빠른 경쟁 세계의 불안정한 성장 대신 안정된 생태계와 자족적인 공동체를 토대로 느리고 성숙한 삶을 향해 우리의 의식과 가치관을 재검토하자는 저자의 일관된 신념이 문팀?타고 팔딱거린다.

각 챕터마다 ‘이어 읽기’ 챕터들을 연결해 놓아, 두터운 책 여기 저기를 건너 뛰어 다니며 읽어도 된다. 이 또한 선택의 자유와 유유자적함을 허하는 슬로 라이프적 글쓰기와 글읽기는 아닐는지.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


입력시간 : 2005-03-0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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