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미디어테라피로 뿌리 뽑는다재발률 70% '고치기 힘든 병', 인지행동 등 병행요법으로 치료율 높여

[클리닉 탐방] 인제대 서울백병원 <우울증 클리닉>
우울증, 미디어테라피로 뿌리 뽑는다
재발률 70% '고치기 힘든 병', 인지행동 등 병행요법으로 치료율 높여


평소 완벽한 업무 처리로 사내에서 능력을 인정 받으며 승승장구해 온 금융 회사 중견 A씨(46ㆍ남). A씨는 1년 전 자신이 관리하던 후배 직원이 큰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회사에 자그마치 100억원의 손실을 안겼다. 퇴사 조치는 물론 엄청난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도 선후배들이 열심히 손을 써 준 덕분에 사표를 내는 선에서 위기를 그럭저럭 무마할 수 있었다.

가족과 회사 동료들은 “십년감수했다”고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은 끝났다”며 극심한 절망감에 빠진 그는 목을 매 죽으려 했다. 가족들은 “먹고 살 돈도 아직 남았고, 할 일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울며 불며 매달렸지만, 그는 이후에도 수 차례 더 자살을 기도했다.

요즘 세상이란 게, 신문을 펼치거나 TV 스위치만 켜도 우리를 울적하게 하고 열 받게 만드는 것이 산적해 있는 때다. 바로 며칠 전, 우울증에 시달리던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던 터다. 국내 자살률 통계는 4 5분마다 한 명씩 목숨을 끊는데, 그 80%가 우울증 환자라고 지적한다. 우울증은 성인 10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하는 흔한 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우리증 치료를 받은 사람이 2003년 23만명을 넘어 섰다. 하지만 치료율은 낮다. 우울증 환자의 10~25% 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마치 ‘정신 이상자’ 취급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우울증이 뭐 그리 대단하냐’, ‘살다 보면 한두 번 그럴 때가 있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맞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우울한 때가 분명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거나 직장을 잃었다거나, 속상한 일을 당했을 때 울적한 기분이 드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딱히 그럴 만한 일이 없었는데도 잠을 못 자거나 절망감에 자꾸 빠져 들면, 또 그런 상태가 두 달 이상 지속된다면 그건 ‘우울증’이란 병에 걸린 것이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특히 IMF 이후부터 자살률이 치솟는 등 더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최근의 상황을 우려한다.

우울증은 뇌신경에 이상이 생긴 탓이다. 혈압을 조절하지 못하면 고혈압이 되고, 혈당 분해 호르몬이 부족하면 당뇨가 되 듯, 의욕이나 관심ㆍ정서 등을 관장하는 뇌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우울증이 온다. 그 원인은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한 때문일 수 있고, 이혼이나 퇴직 등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탓일 수도 있다. 임신과 출산, 폐경 등 호르몬 분비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여성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남성의 2배나 된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엔 그럴만한 일이 아닌데도 ‘잠을 못 잔다’, ‘입맛이 없다’, ‘성욕이 안 생긴다’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또는 그와 정반대의 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은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 10명 중 9명은 호전된다. 그러나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우울증은 재발률이 60~70%에 달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난 안 될거야’라거나 ‘난 쓸모가 없다’고 하는 등 매사를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으로만 본다. 또 이런 생각을 스스로가 더욱 강화하면서 자기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 이런 중중 상태라면 항우울제 복용만으로는 부족하다. 증상을 완화시킴과 동시에 환자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우울증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야 치료가 되는 것이다.

우 교수가 약물 치료와 병행하여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인지행동 요법이다. 환자들과 상담을 하거나 일기를 쓰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생각과 행동 패턴을 함께 추적하며 타당성을 확인하고, 또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스스로 깨우치도록 이끌어 준다. 예를 들면 환자들이 큰 성취감을 맛 봤던 이전의 경험이라던가 유쾌했던 순간 등을 하나 하나 떠올리도록 하고, 이런 것들을 다시 시도하여 봄으로써 환자 자신이 ‘절망의 늪’에서 스스로 헤쳐 나올 수 있게 도와 준다.

최근 환자들과 가졌던 그룹 상담의 풍경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해변에 사람이 서 있는 사진과 고층 아파트 꼭대기를 가리키는 사람의 모습을 환자들에게 보여 준 뒤 이에 대한 소감을 물은 결과, 정상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답이 돌아 왔다. 대부분이 “바다에 막 뛰어들려고 한다”거나 “어떤 사람이 뛰어 내린 아파트” 등으로 묘사했다는 것. 이 방법은 바로 우 교수가 최근 치료에 본격 도입한 미술 치료와 미디어 테라피의 한가지 사례다. 디지털 사진, 그림 등 우리들에게 친숙한 다양한 매개체를 활용하여 환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환자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생각의 뿌리를 더욱 정확하게 찾아 내고 치료 효과를 더욱 높이는 방법이다.

바이오 피드백 요법은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우울증에 수반되는 불안감이나 긴장을 완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몸의 근육이나 체온, 혈액 등이 보내오는 생체 신호를 전자 장치를 통해 감지한 뒤 환자들이 이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가면서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가 단계적으로 완화할 수 있도록 한다.

우 교수는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재발이 잦은 유형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일을 자꾸 되씹는 사람, 완벽주의자, 만남과 헤어짐 등 대인 관계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1시간 30분 정도씩 매주 4회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하면 우울증 발병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 다음호에는 <치매 한방 치료>편이 소개됩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입력시간 : 2005-03-08 19:19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