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송호근 지음| 21세기 북스 발행| 1만2,000원

[출판] 참여정부의 현주소와 한국의 미래
|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 송호근 지음
| 21세기 북스 발행
| 1만2,000원


참여정부가 들어선지 2년이 흘렀다. 역대 정권 중 최약체로 꼽히는 노무현 정권은 당내 세력이 취약한 태생적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여당의 진보적 방향 설정에 맞서는 거대 보수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취임 초기부터 위기를 겪어왔다. 권위를 벗은 대통령의 가벼운 말과 행동이 종종 입방아에 오르며 자질 시비를 초래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질겁할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광화문에 집결한 국민들이 탄핵반대 촛불시위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두 해 살림이었다.

그동안 자칭 타칭 진보와 보수로 나뉜 세대・계층간 대립의 골이 깊어져갔다. 대통령의 입에서 ‘시민 혁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시민참여가 늘어난 요즘 현 정권이 추구하는 토론문화가 활성화됐지만 어째 합의의 도출보다는 갈등의 표출이 더 선명한 것 같다.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 최초의 정권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체감되는 실리가 부족하자 대선당시 현 정권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경제정책의 실패를 거세게 성토하고 나섰다.

이처럼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혼란과 소란이 끊이지 않는 한국의 현주소를 또박또박 짚으며 그 발단원인과 진행과정을 추적하고 결과의 무게를 계량한 책이 있어 주목된다. 중진사회학자로 날카로운 식견을 펼쳐온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가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란 화두를 던져놓고 참여정부 2년을 중간평가하며 한국의 미래를 조심스레 전망했다.

글머리에서 미리 저자는 자신을 기회주의자로 분류한다. 작금의 혼란을 바라보며 한국 사회의 파산을 경고하는 보수나 필수적 통과의례라고 주장하는 진보의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중심을 이동하는 자유인으로 스스로를 설정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 사회의 내파에 대한 우려가 마음 한 구석에서 솟구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 개혁에 필수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전환의 비용’도 피해갈 수 없음을 인정한다. 더불어 노무현 정권의 지난 2년을 사정없이 꼬집고 한국의 척박한 정치 풍토를 견뎌내기 위한 진보정치의 생존방식은 그게 아니라고 쓴소리를 내뱉는다. 헌데 정확한 시대진단과 상황인식을 전제로 했다는 저자의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휘청 쏠리는 행간을 간혹 잡아내게 되는 것은 너무 예민한 반응일까.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노무현 정권이 초래한 이념과잉과 정책 부재의 현실을 고하고 후반부에서는 개혁의 주체였던 젊은 세대가 ‘386세대’와 ‘포스트 386세대’로 분화되면서 새로운 세대 갈등 양태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분석 틀로 삼은 이념과 세대는 이 시대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핵심 요소다.

정치 개혁 면에서 현 정권은 그 동안 아무도 하지 못한 일들을 뚝심으로 밀고나가고 있다. 제대로만 진행된다면 훗날 귀한 업적으로 빛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와 사회 영역에서 보여주는 현 정권의 모습에 혀를 찬다. 천도, 국가보안법 철폐, 친일 진상 규명 등 쟁점사항을 제안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문제가 다분하고 그 와중에 세대, 계급, 이념을 둘러싼 대립과 균열이 사회 불안을 위험 수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인권, 평등, 개방, 분배, 균형, 환경, 자율, 타협, 토론 등 명명백백히 올바른 명분들을 세워두고도 치밀한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만족스런 실적을 내놓지 못하는 현 정권의 아마추어리즘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개혁의 이상은 높지만 우리 사회의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고 ‘분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내놓는 것은 자원의 지역분산, 균형발전, 지방분권 같은 ‘분산’ 정책일 따름이다. 현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의 큰 기둥인 이념이 계속 과잉으로 치닫고 정책은 빈곤한 상태로 이어진다면 진보정치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는 충족되기 힘들다. 이념은 정책을 통해 실현되는 법. 실리를 챙기는 실용주의가 필요한 때라고 저자는 일관되게 주장한다.

진보정치의 미래, 한국 사회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저자가 상정한 새로운 변혁주체는 ‘포스트 386세대’다. 편의상 연령대로 구분하자면 36세~45세의 386세대보다 더 젊은 포스트 386세대는 20세~35세의 젊은층으로 구성된다. 386세대가 혁명의 전위부대로 정치권력과 제도라는 하드웨어를 공격했다면 문화적 탐닉 세대인 포스트 386세대는 인습, 규범, 관행 등 사회의 소프트웨어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 새로운 세대는 386세대보다 개인주의적이며 평등지향적이다. 규제와 분배 같은 가치관을 중요시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선에 한해서이며 공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원하든 원치 않든 386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머지않아 이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의 가장 큰 지지자인 포스트 386세대는 이미 사회 변화의 중심으로 이동중이다. 허나 공익, 자유의 책임, 대안적 질서 등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익명의 개체집단인 포스트 386세대를 하나의 이정표 아래 끌어 모을 구심점을 저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3년후 2007년 대선의 주역으로 떠오를 포스트 386세대가 과연 어떤 결과를 산출해낼지 예의 주시된다.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3-09 11:48


이기연 출판전문 자유기고가 popper@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