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치회 한입에 봄내음이 입안 가득4월 말까지만 맛 볼수 있는 별미, 원시 어업 형태인 '독살'도 볼거리

[주말이 즐겁다] 태안반도
실치회 한입에 봄내음이 입안 가득
4월 말까지만 맛 볼수 있는 별미, 원시 어업 형태인 '독살'도 볼거리


봄은 어떤 맛일까. 정다운 사람과 함께 들녘에서 캐온 냉이로 끓여 낸 국맛일까. 남도 산기슭의 야생 차밭에서 곡우 전에 따서 덖은 찻잎처럼 싱그럽고 그윽할까. 아니 어쩌면 연분홍 진달래 꽃잎으로 멋을 낸 화전마냥 향긋할지도 모른다.

봄맛은 이처럼 혀끝에 닿는 대상에 따라 각양각색일 터인데, 충청도 태안 바닷가에서 만나는 봄맛은 조금 씁쓰름하면서도 담백하다. 남도에서 봄소식이 전해지면 잡히기 시작하는 ‘실치’라는 바닷고기 때문이다.

설치는 보통 3월 중순쯤부터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잡히기 시작한다. 이 무렵이면 태안반도 인근 해역은 2톤짜리 실치잡이 배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마검포 어부들은 보통 새벽 3~4시경에 바다로 나가서 서너 시간 그물질을 한 다음, 7~8시경에 마검포항으로 들어온다. 부두로 내려진 싱싱한 실치들은 인근 서산이나 당진 지역에서 몰려든 상인들이 횟감으로 사가고, 남은 실치들은 마른 반찬용으로 팔리기 위해 선별해 뱅어포로 말린다.

새콤달콤한 맛에 미식가들 줄이어
길이가 겨우 2~5cm에 불과한 실치는 실처럼 가늘고 조그만 생선으로 살아있을 때는 뱃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치’자가 들어가는 다른 바닷고기처럼 성질도 급하고 약해 그물에 잡히자마자 바로 죽는다. 1시간 정도 지나면 투명하던 몸통도 하얗게 변하고 한나절이 지나면 맛이 가기 시작한다. 태안반도의 봄을 대표하는 별미인 실치회를 태안 마검포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봄마다 남풍이 불기 시작하면 미식가들의 발길이 연일 마검포로 줄을 잇는다. 올해는 실치잡이 배가 3월12일 첫출항을 했으니 태안반도의 봄은 이미 시작한 것이리라.

실치에 각종 양념과 야채, 배 등을 잘게 썰어 넣고 초고추장을 듬뿍 뿌리면 새콤달콤한 무침이 된다. 수저로 떠서 입에 넣으면 술술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다른 생선회와는 달리 씁쓰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별미다. 실치회는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달포 동안만 맛볼 수 있다. 수온이 많이 올라간 5월 이후에 잡히는 것들은 뼈가 굵어져 회로 먹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뱅어포로 만들어 밑반찬으로 활용한다.

실치회에서 씁쓰름하면서도 담백하고, 담백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봄맛을 느꼈다면, 이젠 낙지발처럼 뻗은 태안반도를 둘러볼 차례다. 마검포를 나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해수욕장으로 잘 알려진 몽산포에서 2km쯤 더 가면 인하대 수산연구소가 나오는데, 그 뒤편의 바닷가에선 원시 어업 형태의 하나인 ‘독살’을 볼 수 있다. 해안쪽으로 내려서서 백사장 오른쪽과 왼쪽 끝을 보면 둥그렇게 쌓은 돌담 흔적이 보인다.

밀물과 썰물의 간만의 차이가 크고, 오목하게 들어간 포구에 대나무, 싸리나무, 돌멩이 따위로 보를 쌓아서 고기를 잡던 원시적인 어로 방식을 ‘어살’이라 한다. 이 함정에 밀물로 인해 밀려 온 고기들이 물이 빠져 나가면서 갇히는 것이다. 돌로 막은 것은 ‘독살’, 대나무로 막은 것은 ‘죽살’이라 한다.

1812년 무렵에 만들어진 이 굴혈 독살은, 태안을 비롯한 서해안이나 남해안에 산재한 전국의 200여 개의 독살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좋고 현재도 활용되고 羚?2002년에 민속 자료로 지정되었다. 주민들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숭어, 전어, 멸치, 갑오징어, 가오리 등이 부게(대나무로 만든 들통)에 가득 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걸려 들었다.”고 회상한다.

안흥성·신진도 연륙교 등도 들러볼만
예전 서해의 큰 항구였던 안흥진(安興鎭)은 굴혈 독살에서 승용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독살을 보고 안흥진으로 가면서 모래 깨끗한 채석포와 연포 지나고, 오염 안 된 해변이 일품인 갈음이 해수욕장의 모래를 만지면 곧 안흥진이다. 서해로 내달리던 금북정맥이 내포 지방을 지나 바다로 빠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빚어 놓은 나루. 지금은 서해에 접한 작은 어촌이지만, 백제 시대에는 당나라와의 교역으로 크게 번창했던 항구였다.

안흥항 앞바다는 물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해역이었다. 그래서 이 곳은 지나기 어렵다 하여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렀는데, 나라의 세곡을 실은 배들이 자꾸 조난을 당하자 조정에선 평안한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이름을 안흥량(安興梁)이라 바꾸었고, 이 곳 지명도 자연스레 안흥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안흥항을 지키던 곳이 안흥성(安興城)이다. 조선 시대엔 수군첨절제사를 두어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맡아보게 하였고, 뱃길로 조선을 찾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성안의 건물은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현재 성안에는 대여섯 가구의 민가가 있고, 태국사라는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또 성벽과 네 개의 성문이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는데, 성벽에서 바라보는 안흥 앞바다 풍광이 좋은 편이다.

안흥항 앞바다에 떠 있는 신진도는 10년쯤 전에 연륙교가 놓이면서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섬이다. 안흥항이 역사는 깊지만 수심이 얕고 암초가 많아 큰 배 드나들기가 여의치 않은 까닭에, 말굽처럼 생긴 신진항이 항구 자리로 적격이라 태안의 고깃배들이 점차 신진항으로 몰리고 있다.

* 숙식 마검포 부둣가에 있는 선창횟집(041-674-6270)과 바다횟집(041-674-6563)에서 실치회를 맛볼 수 있다. 1kg에 25,000원 정도인데, 이는 어른 4명이 넉넉하게 맛볼 수 있는 양이다. 2~3명이라면 20,000원 정도면 적당하다. 마검포는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다. 멀지 않은 안면도나 안흥진 등에서 잠자리를 구하는 게 좋다. 안흥진에 횟집과 일반 식당이 제법 많다.

* 교통 서해안고속도로로 접근하는 게 가장 편리하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40번 국도(안면도 방향)→96번 지방도→77번 국도와 만나는 원청리 삼거리→마검포. 문의: 태안군청 문화관광과 041-670-2544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입력시간 : 2005-03-18 15:26


글ㆍ사진 민병준 여행 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