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진홍빛 추억 속에 피다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진달래
아련한 진홍빛 추억 속에 피다

벌써 저 남쪽에선 진달래 꽃 소식이 들려온다. 반갑기만 하다. 봄이 오면 이 메마른 산야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우리꽃. 화려하면서도 슬픈 진달래 꽃빛, 한송이만 쳐다보면 처량하고, 빈약하며 촌스럽다 싶으면서도 무리 지워 우리의 숲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이 땅의 모습이다. 진달래를 바라 보노라면 한 마디로 표현 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복받쳐 올라 이 꽃나무가 정말 우리와는 마음으로 이어 진 우리의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이다. 봄이면 잎보다 먼저 가지 가득 진분홍 빛 꽃송이들이 피어 난다. 다섯장의 꽃잎이 한껏 벌어져 있지만 아래는 한데 붙어 있는 통꽃으로 가지 끝에서 3-6개의 꽃송이가 모여 사방을 둘러 보며 모여 달린다. 잎은 둥근 철쭉과는 달리 뾰족한 타원형인데 다소 광택이 이는 듯도 싶다.

진달래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모든 이들에겐 영원한 고향의 추억이며 고향의 빛깔이다. 봄이면 지천으로 피는 진달래 꽃을 따서 그 시큼한 맛을 보며 입이 까맣게 물드는 줄도 모르며 이 산 저 산을 누비고 다녔던 기억은 분명 즐거운 추억이며 그리움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 꽃잎을 따서 허기를 채우던 서러움은 그 진달래 빛 만큼이나 진한 듯도 싶다.

우리 민속에는 진달래꽃으로 생겨난 화전놀이가 있다. 화전놀이는 진달래 꽃이 만발 한 삼월삼짓날에 부녀자들이 꽃피는 자연으로 나가서 전을 부쳐 먹고 춤추며 노래하고 하루를 보내던 놀이이다. 집안의 남정네들은 무거운 것을 들어 나르고 냇가에 돌을 모아 화덕을 만들어 불을 지펴 놓고 슬그머니 사라지면 아낙들은 솥뚜껑을 얻고 참기름을 두르고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 꽃잎을 올려 놓은 화전(花煎)을 지져 먹는다. 아이들은 그 사이 화전을 부치느라 꽃에서 꽃잎만을 떼어 내고 남은 길게 휘어진 암술대를 휘어 걸고 당기는 꽃싸움, 즉 또 다른 화전(火戰)을 하며 보낸다. 일부 지방에서는 관원들이 화전놀이를 나가 꽃전을 부쳐 먹고 시를 지으며 하루를 보냈다고도 한다.

진달래의 꽃잎을 따서 빚은 술을 두견주라고 한다. 지방마다 조금씩 만드는 방법에 차이가 있는데 백일주라고하여 술을 담근 지 백일만에 마시면 좋다 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찹쌀밥과 진달래꽃을 겹겹이 넣어 빚기도 하며, 다 된 청주에 진달래 꽃을 한달 정도 잠겨 두기도 한다.

진달래로 만드는 음식은 몇 가지가 더 있지만, 고운 오미자즙이나 꿀물에 녹말 가루를 묻힌 진달래를 살짝 데쳐 내어 띄우는 진달래 화채가 유명하다. 이렇듯 진달래는 먹을 수 있으므로 참꽃이라고도 하고, 독성이 있어서 먹지 못하는 철쭉은 개꽃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부른다. 이는 중국 촉나라의 망제 두우가 전쟁에 패망하고 나라를 잃고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고 이 새가 매년 봄이 오면 나라를 잃은 것이 너무 슬프고 원통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온 산천을 날아 다니는데, 이 눈물이 떨어져 피어 난 꽃이 바로 진달래꽃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두견새의 입속색깔이 진달래 처럼 붉은색이어서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진달래는 한방에서는 두견화 또는 만산홍이라 하여 꽃을 약으로 쓰고, 진달래 줄기로 숯을 만들어 이 숯물로 삼베나 모시를 물들이면 화학 염료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푸른빛이 도는 회색물을 들일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숲은 점점 우거지고 그 숲엔 반가운 수많은 나무들이 터전을 잡으면서 진달래는 점차 조금씩 밀려 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흐드러진 진달래는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의 발길에 뿌려 놓겠다는 시인의 애절함이 여전히 마음을 흔들면서 말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입력시간 : 2005-04-08 13:22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원 ymlee@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