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빛 새 생명이 숲을 깨운다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미치광이풀
노란빛 새 생명이 숲을 깨운다

요즈음처럼 계절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때가 또 있을까. 점차 숲은 녹색을 향해 닮아가겠지만, 지금은 산마다 골마다 그 빛이 다르다. 한 숲에서도 식물마다 제 각기 싹 올리고 꽃 피우기를 다투고 있고, 같은 식물이라도 북으로 남으로 혹은 위로 아래로 그 위치에 따라 각기 자라는 행태가 달라 신기하기만 하다.

미치광이풀은 이런 계절의 변화를, 특히 봄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미 꽃을 한참 피운 곳이 있는가 하면 잔설의 그늘진 곳엔 이제 차가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순이 한창이다. 그리 여린 새순들이 어떤 힘으로 언 땅을 뚫을까를 생각하면 신기하고 대견해 그것이 바로 생명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미치광이풀, 가만히 불러보면 이름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름은 특별하고 생소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전국에 웬만큼 깊은 산, 돌이 많은 계곡에 흙이 쌓인 장소를 눈 여겨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른 봄(숲 속은 도시보다 훨씬 봄이 더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깊은 숲에 가면 노란빛 새순이 눈길을 끄는 식물이 있는데, 미치광이풀이기 쉽다. 모든 새싹은 연두색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미처 녹지 않은 계곡의 얼음을 바라보며 햇볕을 받지 못한 콩나물처럼 노란 싹을 내놓았다가, 봄볕이 따뜻해져 본격적인 광합성을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초록색 줄기를 쑥 올려 보내며 어느새 잎새도 초록으로 변한다. 이때 높이는 30~60cm다.

푸르러진 잎새는 어긋나게 달리는데 아주 길게 늘어뜨린 달걀 같은 모양을 하고 가장 자리는 대게 밋밋하다. 길이는 10~20cm쯤 된다.

그렇게 푸르러진 잎 사이로 꽃이 달리는데 꽃잎 색깔이 암갈색인데다가 말괄량이 아가씨의 짧은 치마처럼 작은 통모양으로 생겼고 그 안에 수술이 5개씩 있어 한번 보면 기억하기 쉽다. 게다가 이름까지 특이해 알고 나면 절대로 잊을 수 없게 되는 우리의 꽃이다.

이름이 특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풀에는 신경흥분효과가 있어 소가 먹으면 미친 듯이 날뛰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약용 식물이고, 일반인들은 독성이 있어 함부로 먹을 수 없다. 지역에 따라서는 미친 풀, 광대작약, 독뿌리 풀(북한) 등으로 부르는데, 역시 그 성분때문인지 이름들이 얌전하지는 않다.

미치광이풀은 현재 산림청이 지정하는 희귀식물목록에 올라와 있다. 그 만큼 예전에는 보기 어려웠으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한방에서는 이 풀의 땅속 덩이줄기를 동랑탕(東浪宕)이라 하여 귀한 약재로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그 동안 마구 채취되어 희귀식물이 되었으나 최근 중국에서 많이 수입하고 있어 굳이 인건비를 들이고 산에서 캐지 않아 이제는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식물이 훼손되지 않아 좋다고 해야 할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자연의 회복력이 그토록 빠르다는 사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욕심이 이렇게 잘 자라는 식물들을 멸종 위기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지금보다 훨씬 잘 살게 할 수 있는 식물이 무척 많을 것이다.

봄 산에 가서 이 꽃을 만나려면 깊게 들어가고, 계곡을 찾아야 하며, 노랗거나 붉거나 희지 않아도 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식물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이성을 흐리거나, 병을 치료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생물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화두가 아닌가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04-27 15:53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