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혁의 건강백세] 기침과 폐기능


“다른 증상은 없는데 목이 간질간질하고 기침이 나오기 시작하면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심하게 합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걱정을 해줄 정도입니다.”

진료실에 들어선 40대 중반의 황 부장은 지난 2개월 동안 기침에 시달리느라 옆구리가 결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2주 이상 지속되어 흉부사진도 찍어보았고 약도 복용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목소리도 갈라지고 가라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 신경이 많이 쓰였다.

체격이나 맥 등을 살펴보니 전형적인 태음인. 선천적으로 간 기능은 좋으나 폐 기능은 떨어지는 태음인데다 건조한 사무실 환경 때문에 기관지의 점막이 지나치게 말라서 생긴 기침이었다. 폐를 촉촉하게 만드는 맥문동탕을 처방한 후 물과 차를 많이 마시라고 권했다. 2주 후 매우 좋아졌다며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김 이사와 함께 왔다. 자기와 거의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기침은 평소에 많이 느끼는 증상이라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감기에 걸려 몇 일 기침을 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 터라 가볍게 넘겨버린다. 하지만 기침은 만성적으로 진행 되기도 한다. 폐결핵과 같이 심각한 질환이 아니더라도 몇 달씩 떨어지지 않고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흉부촬영을 해봐도 이상이 없다고 하고, 주는 약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이런 기침은 대개 폐의 기운이 부족한데다 건조해져서 생긴다. 양방에서는 폐를 촉촉하게 하기 위해서 대개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한다. 하지만 단순히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 것으론 마른 기침을 치료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방에선 적극적으로 폐를 촉촉하게 만드는 윤폐(潤肺) 약물을 써서 치료한다.

기침을 해도 거의 가래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건조해져 있고 증상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면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래가 거의 안 나오고 있다면 폐로 들어온 이물질도 원활하게 배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맥문동, 천화분 등의 약물로 폐에 진액을 공급하면 기관지를 촉촉하게 만들고 가래가 정상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다. 증상에 따라서는 열을 식혀주는 석고나 죽엽 등의 약재를 배합하기도 한다.

한방으로 잘 치료되는 오래된 기침이 또 하나 있다. 목에 뭔가 걸린듯한 느낌 때문에 나오는 기침이다. 한방에선 매핵기라고 표현하는 증상인데 대개는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난다. 수시로 ‘음음’하는 소리를 내야 목이 덜 답답해서 주변의 눈총을 받게 된다.

올해 고3인 김 군은 항상 전교 1~2등을 차지하지만 친구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으음’ ‘큼큼’ 하는 소리를 계속 내기 때문이다. 교사도 지적할 정도여서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할 수가 없다. 도서실이나 독서실에 가도 남의 눈치가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연히 공부공간이 자신의 방으로 한정된다. 이런 증상은 기수(氣嗽)라고 하는데 소자강기탕이나 가미사칠탕, 반하후박탕 등을 써서 치료를 한다.

한방에서 기침을 나눌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가래다. 보통 해수(咳嗽)가 모두 기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정확하게 구분하면 해(咳)는 가래는 나오지 않고 기침만 하는 것으로 폐의 기운이 상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수(嗽)는 기침은 하지 않으면서 가래가 많은 증상이다. 비장에 습이 너무 많을 때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또 해수는 가래도 나오고 기침도 나오는 것을 말한다. 보통 감기를 앓을 때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찬바람 등으로 폐기를 상한데다 비습도 많아진 것으로 본다.

기침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따라서 별 것 아닌 기침도 원인을 잘 파악해서 치료해야 한다. 코가 메이고 목소리가 탁하면서 목구멍이 가렵고 기침이 나서 말을 끝맺지 못하는 것을 풍수(風嗽)라고 한다. 이런 증상에는 마황이 주약으로 쓰이는 삼요탕이나 관동화산 등이 잘 듣는다.

목이 쉬거나 찬 기운만 접하면 기침이 심해지는 증상은 한수(寒嗽)라고 한다. 찬 기운에 감촉된 만큼 따뜻한 약으로 기운을 열어줘야 한다. 또 입과 목이 마르며 거품침을 토할 듯 내는 기침은 열수(熱嗽)이고, 습기 많고 차가운 곳에 오래 있어 으슬으슬 추우면서 생기는 기침은 습수(濕嗽)다. 마른 기침만 나고 가래가 없으면서 얼굴이 벌겋게 되는 기침은 울수(鬱嗽)라고 하는데 신수(腎水)가 말라서 열이 폐에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외에 폐결핵이나 과로 등으로 나타나는 노수(勞嗽)나 하우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사시사철 잘 걸리는 기침인 천행수(天行嗽) 등이 있다.

황&리한의원 원장


입력시간 : 2005-05-03 19:29


황&리한의원 원장 sunspa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