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에 올인한 연변처녀 로멘스'국민 여동생' 스타성에 의존, 기획상품 한계 드러낸 '평범작'

[시네마 타운] 댄서의 순정
문근영에 올인한 연변처녀 로멘스
'국민 여동생' 스타성에 의존, 기획상품 한계 드러낸 '평범작'


문근영은 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닌 배우다. 그가 주연한 두 편의 영화(‘장화홍련’과 ‘어린 신부’)는 모두 전국 관객 300만 명 이상의 대박을 터뜨렸고, 개봉을 앞둔 ‘댄서의 순정’은 사전 예매율 80%에 육박하는 맹위를 떨치며 또 한 번의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도 '댄서의 순정'과 '문근영'은 보고 싶은 영화 1위, 배우 순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비수기인 4월, 전례 없는 흥행 부진으로 고민에 빠진 충무로는 ‘문근영 효과’를 등에 업고 위기 국면을 돌파할 호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흥행 예감과는 별개로 ‘댄서의 순정’은 추천할만한 수작이 아니다. 최고 상종가를 치고 있는 여고생 배우 문근영은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지만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국민 여동생'의 위력
문근영을 지워버린다면 ‘댄서의 순정’은 기대주 목록의 말석에도 끼지 못할 태작이다.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허점을 지닌 이 영화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순전히 ‘무균질, 무결점 소녀’로 불리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가공할만한 스타성 때문이다. 우선 시나리오는 당혹스러울 만큼 단순하고 어색하다.

조선족 최고의 댄스 스포츠 선수인 언니를 대신해 한국을 찾은 조선족 처녀 장채린(문근영)은 한 때 잘 나가던 댄스 스포츠 선수 나영새(박건형)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채린의 속임수가 들통나면서 어색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춤을 매개로 로맨스로 바뀐다. 영새는 라이벌 현수(윤찬)의 음모로 다리를 다치지만 채린은 뛰어난 댄서로 거듭나고 영새와의 사랑도 확인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문근영이 캐스팅 된 후 많이 바뀌었다.

당초에는 지금처럼 맑고 순수하기만 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립과 갈등을 비롯해 성인 취향의 설정들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문근영이라는 순결 아이콘이 합류한 뒤 맑기만 한 연변 처녀의 로맨스로 둔갑했다. 그 와중에 제법 섹시한 장면들도 잘려 나갔다. 에로틱한 장면이 삭제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때문에 드라마의 맥이 끊어진 것이 문제다.

제작사는 "시나리오 상의 허점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할 지 모른다. 하긴 극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고, 캐릭터의 일관성이 흐트러지고, 이야기가 진부하게 바뀌는 것이 뭐 대순가. 그들은 그 모든 결점을 일거에 만회해 줄 수호신으로 문근영을 생각한 것이다. 문근영은 정말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괴력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다. 7개월 동안 발톱이 빠지도록 댄스 강습을 받고, 볼의 젓 살을 빼는 등 체중을 줄였으며, 연변 현지를 답사해 조선족 사투리를 익히는 등 가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더 놀라운 것은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녀 배우의 존재감이다. 입에 붙지 않은 연변 말을 내뱉거나 닭살 돋는 대사를 칠 때, 심지어 다음 상황이 뻔하게 그려지는 판에 박힌듯한 연기를 할 때조차 문근영의 존재감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주변 인물들은 있는 둥 마는 둥 시선을 끌지 못한다.

물론 이는 문근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그의 위력은 대단하다. 극중 불법 체류 감시원 커플처럼 당초 시나리오에서 큰 비중이었던 인물들도 문근영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도전정신·창조성·색깔 전무
‘댄서의 순정’은 취약한 장르(댄스 영화)를 개척하는 도전 정신이나 감독의 창조성에 대한 의욕 등은 일절 보여주?않는다.

박영훈 감독(‘중독’)이 "편집권은 내게 없었다. 그 장면이 어색한 이유는 투자사 쇼이스트에게 물어보라"고 했을 정도로 이 영화는 스타 중심의 철저한 기획 상품이다. 제작사인 컬처캡미디어(‘어린 신부’ ‘제니, 주노’)는 10대 기획영화 전문 회사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떨친다. ‘어린 신부’와 ‘제니, 주노’가 터부시되고 있는 연애, 섹스, 출산이라는 10대들의 핵심 고민에 기초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댄서의 순정’에는 그런 색깔마저 전무하다.

'댄스 영화'라는 미답의 장르를 표방했지만, 이 영화는 곰팡내 나는 신파 멜로드라마의 관습에 뼈 속까지 물들어 있다. 이야기의 흐름은 덜컥거리고 극적인 사건이 터지는 시점도 좋지 않다. 로맨스 영화의 정석을 짜깁기한 듯한 장면에서는 관객을 우롱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문근영의 탁월한 춤 실력을 자랑하는 댄스 장면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몸의 아름다움과 율동성, 다이내믹한 운동감으로 보는 사람에게 쾌감을 선사해야 하는 춤의 카타르시스적 기능은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특히 실제 댄스 스포츠 선수들을 보조 출연자로 기용하고 카메라 3대를 돌려가면서 촬영했다지만, 국가대표 선발전 장면은 클라이맥스로서 빈약하다.

지난 해 선보였던 댄스 영화 ‘바람의 전설’이 이루지 못한 댄스 장르의 신경지를 개척하겠다던 다짐도 공염불이 된 셈이다. 영화 산업에서 쓰이는 용어 중에 '하이 컨셉트'이라는 말이 있다. ‘스물 다섯 자 이내로 줄거리 요약이 가능한 단출한 컨셉트, 강력한 스타 파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지닌 기획영화’를 말한다.

최고의 관객 동원력을 지닌 배우를 캐스팅 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댄서의 순정’은 이 요건을 갖췄다. 하지만 오로지 문근영의 해맑은 얼굴만을 보고 2시간을 버티라고 주문하는 이 영화를 '성공한 기획'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댄서의 순정’은 수 천억원을 호가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벌벌 떠는’ 문근영의 힘으로 모든 허물을 가리려 한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5-12 16:50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