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계급사회에서 벌어진 잔혹한 연쇄살인사건 그린 웰메이드 시대극

[시네마 타운] 혈의 누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
계급사회에서 벌어진 잔혹한 연쇄살인사건 그린 웰메이드 시대극


충무로에서 ‘프로덕션의 완성도가 높은 질 좋은 상품’을 의미하는 '웰메이드'라는 말은 촬영과 조명, 음악, 미술 등 영화의 외양을 결정하는 제작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작품에 씌워지는 왕관이었다. <살인의 추억> <조선남여상열지사-스캔들>(이하 '<스캔들>') <올드보이> <태극기 휘날리며> 등 화면만 봐도 부티가 나는 '돈 깨나 쓴' 영화들이 그 칭호를 받아왔다.

그러나 웰메이드가 대세가 됐다고 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완성도가 영화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화려한 그림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건 길어야 30분이다. 보기 좋은 그림도 알맹이가 빠진 껍질 뿐이라면 그 또한 문제가 될 터. <혈의 누>는 화면에 윤기를 입히는 영화 세공력의 발전을 실감할 수 있는 웰메이드 시대극이지만 그 장점을 끝까지 유지하기에는 뒷심이 딸리는 범작이다.

조선 연쇄살인 잔혹극
이인직의 <혈의 누>는 신문물과 사상이 밀려드는 개화기, 전통적인 유교 질서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가치관과 도덕률에 대한 동경을 담은 신소설이다. 영화 <혈의 누>는 새로운 시대 정신에 대한 열망이 완고한 구습에 의해 탄압을 받고 엄격한 계급 사회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한 혼탁한 상황을 배경으로 삼는다.

19세기 초 제지업이 번성한 동화도에서 조공으로 받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해결을 위해 뭍으로부터 수사관 원규(차승원) 일행이 파견되지만 그가 당도한 후부터 섬에서는 참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7년 전 천주쟁이로 몰려 죽은 강객주(천호진)의 원혼이 저주를 내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원규는 강객주 일가가 죽임을 당한 방법으로 5일간 5명의 사람이 죽는다는 단서를 가지고 수사를 시작한다.

'시대극'은 한국영화계에서 성공하기 힘든 장르 중 하나다. 시대 고증과 재현에 들어가는 지극한 공력,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성의 어려움, 젊은 관객층을 유혹하기 힘든 시대 배경의 한계 등이 흥행에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캔들> 이후 사정은 좀 변했다. <혈의 누>는 시대극 재현의 밀도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나무랄데 없는 웰메이드 상품이다.

무대가 되는 동화도 제지소를 거대한 세트로 꾸미기 위해 제작비의 1/3인 15억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연쇄살인 영화에 등장하는 비주얼을 조선 시대로 옮겨 놓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증 작업도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조선 시대 법의학서인 '무원록'에 기초한 시체 검시 장면, 능지처참된 시체 제작, 무속, 태형 제도 등 시대 재현을 위해 기울인 노력과 제작진의 고생담만 한 보따리다.

4년 전, '환생'이라는 초현실적 소재를 멜로의 코드와 결합시킨 <번지 점프를 하다>로 데뷔한 김대승 감독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외관상 미끈하게 결점이 없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정작 <혈의 누>의 발목을 잡는 것은 드라마와 장르다. '조선 시대에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라고 선전된 이 영화는 실상 스릴러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임무'에는 너무 태만하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미
<혈의 누>의 가장 큰 실책은 이야기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드라마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조성해놓은 장르의 긴장감을 속절없이 풀어버리는 한가한 후반부에서 이런 한계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다섯 가지 방법으로 다섯 명의 사람을 죽인다'는 살인 방법이 예고되면서 바짝 조㈐낫?긴장감은 살인 사건의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연쇄 살인' 자체보다 그 배경에 무게를 싣는 쪽으로 바뀐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주메뉴인 미스터리 사건 해결은 뒷전으로 밀리고 보조 메뉴인 인간 욕망의 추악한 말로를 보여주는 것에 매진하면서부터 관객은 김이 빠진다. 살인 사건의 비밀이 폭로되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다. 천주교로 대표되는 신(新) 사상과 구학의 대립을 통해 시대와 인간의 본원적 욕망에 대해 일갈하려는 뜻은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여러 겹의 이야기가 가지를 치기 시작하면서 중심이 애매한 영화가 돼 버렸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세력의 음모가 드러나고 이기적인 인간의 욕심이 파국을 부른다는 어설픈 교훈극으로 흐름이 기울어지는 순간에는 이미 영화는 지루해진 후다.

<혈의 누>는 충무로 웰메이드에도 어느덧 ‘전형’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한국형 웰메이드의 절대 가치는 '탄탄한 이야기'와 '그럴듯한 그림'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탁월한 세공력으로 조선 시대 복식과 풍습을 보란 듯이 재현해낸 미술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가치다.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 시절 숱한 사극을 통해 시대극 연출의 노하우를 익힌 김대승 감독의 장기는 제대로 발휘된다. 하지만 미술과 시나리오의 강점을 극대화해야 할 연출력이 뒤를 받쳐주지 못한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그럴듯하게만'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영화는 요점을 잃고 만다. 시쳇말로 '때깔'은 좋아졌지만 내용은 허약해진 요즘 한국영화의 한계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셈이다.

시대극 스릴러라는 미답의 장르에 대한 모험심,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한 감독의 자의식까지, 도전정신은 가상하지만 <혈의 누>는 너무 많은 맥락들에 발을 걸치고 있다. 더 많은 장점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림을 너무 크게 그렸다. 특히 후반부 30분 동안에는 의미 있는 주제에 대한 강박이 ‘외딴 섬에서 5일간 다섯 명의 사람이 죽어나가는 연쇄살인’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삼켜버린다. 새로운 가치와 낡은 가치의 대립 구도를 통해 '의미'는 풍부해지었을지언정 '재미'는 현격하게 반감되고 만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속에 시작한 영화가 끝난 후, 선혈이 낭자한 시체만이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5-18 20:16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