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휘도는 물줄기 哀史를 품어 푸르른가산태극 수태극이 빚은 자연의 경이로운 조화

[주말이 즐겁다] 영월 서강
'한반도' 휘도는 물줄기 哀史를 품어 푸르른가
산태극 수태극이 빚은 자연의 경이로운 조화


“와, 정말 똑 같아요! 동해, 남해, 그리고 서해의 갯벌까지….”

강물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감탄사를 내뱉는다. 한반도의 근간인 백두대간의 짙고 높은 숲과 짙푸른 동해, 썰물 때면 드러나는 자랑스런 서해의 갯벌, 해남의 땅끝, 그리고 호랑이 꼬리까지…. 이는 산과 강이 서로 껴안고 휘돌아 가면서 엮어낸 자연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자연의 경이로운 조화 앞에서 통일의 염원을 빌어본다.

‘한반도 지형’ 펼쳐진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은 선암마을이다. 다른 주변엔 마을이 없으므로 선암마을 주민들이 곧 한반도 주인인 셈이다. 선암마을은 한반도지형으로 알려지기 전에는 한적한 강마을일 뿐이었다. 물론 지금도 10여 가구의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면서 살고 있다.

산 깊은 강마을인데도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몰려든다. 마을 앞 강변에 호박돌과 잔돌들이 적당히 깔려 있어 인기가 있다. ‘동해’에 속하는 강 건너편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뼝대(벼랑)가 솟아있어 절경을 이룬다. 강물엔 피라미, 쉬리, 꺽지도 있고 가끔 쏘가리도 눈에 띈다고 한다. ‘백두대간’이라 할 수 있는 능선에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큰 석회암 구멍바위가 있는데, 마을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 때문에 동네처녀가 바람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이야 한반도 지형 덕에 도로가 닦이면서 차량으로도 통행할 수 있지만, 5년 전까지만 해도 나무로 만든 섶다리나 줄배로 건너야 갈 수 있는 한적한 강마을이었다. 줄배는 이제 사용하지 않아도 섶다리는 요즘도 제법 쓸모가 있다. 특히 가끔 찾아드는 관광객들에게도 섶다리는 인기가 있다.

섶다리는 잡목의 잔가지로 엮어서 만든 나무다리다. 나무는 Y자형의 소나무를 일곱 자 간격으로 양쪽에 박고 싸릿가지를 엮은 바자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바닥에 솔가지를 깔고 흙을 다져서 바닥을 만들었다. 이렇게 놓은 섶다리는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도끼와 끌로만 기둥과 들보를 맞추었다. 주로 추수가 끝난 늦가을에 다리를 놓는데, 겨울 지나 이듬해 장마가 들기 전까지 사용했다.

선암마을 오가는 길목에 자리한 영월 책박물관은 폐교된 분교를 개조해 1999년 개관했다. 설립자인 박대헌 관장이 소장한 책 2만여 점으로 꾸민 상설전과 특별전이 볼거리다. 한때 적자가 심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으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1960년대까지의 어린이 교과서와 동화책, 만화책 등의 어린이 관계 자료를 찬찬히 구경하다 보면 옛 추억이 아련히 다가온다.

청령포로 유배 온 단종이 눈물 흘리며 우는 소리를 보고 들었다고 전해지는 관음송.

선돌기암이 솟아있는 소나기재
책박물관을 나와 배일치 터널을 지나면 영월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소나기재. 단종이 영월로 유배당하면서 이 고개를 넘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고갯마루에 차를 대고 평탄한 오솔길을 잠시 걸어 들어가면 까마득한 낭떠러지와 ‘선돌’이라는 커다란 기암이 반긴다.

선돌기암은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과 더불어 서강에서 쌍벽을 이루는 경관을 자랑한다. 지질학에선 선돌은 바위 안에 자갈이 들어 있는 역암이라 매우 단단해 침식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 설명한다. 우뚝 솟은 선돌 너머로는 크게 호를 그리며 흘러가는 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인다. 한창 농사 준비에 바쁜 강마을이 정겹다.

소나기재를 내려서면 장릉(莊陵)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영월로 유배왔다가 죽임을 당한 단종을 모신 묘다. 단종의 억울한 넋이 깃들어 있는 이 고을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장릉에 들러 예를 갖춘다. 영월엔 장릉 외에도 단종과 관련된 유적과 지명이 즐비하다. 소나기재를 비롯해 군등치, 배일치 등의 恣?이름들이 그렇고, 읍내의 자규루, 금몽암, 영모전, 관풍헌, 그리고 청령포 등 모두 단종과 관련있는 유적지다.

단종이 영월로 내몰린 뒤 처음 머물던 청령포는 한쪽만 빼고는 모두 깊은 강물이 가로막고 있는 강변이다. 황포돛을 단 동력선을 타고 강을 건너면 울창한 솔숲이 반긴다. 숲속에는 단종이 머물던 어가를 비롯하여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적은 금표비(禁標碑), 단종이 서낭당을 만들 듯이 쌓았다는 돌탑 등이 남아있다. 솔숲에서 눈길을 끄는 나무는 천연기념물(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觀音松). 단종의 유배 생활을 지켜보았고, 단종이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소나무다.

* 별미 장릉 옆 골목에 있는 장릉보리밥집(033-374-3986)의 꽁보리밥은 영월 읍내에서 유명한 별미로 꼽힌다. 호박잎, 머위 등 농약을 치지 않고 가꾼 10여 가지 풋풋한 나물을 보리밥에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옛 추억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1인분 5,000원.

* 교통 △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88번 국가지원지방도→주천→서면→3km→영월책박물관(우회전)→3km→전망대. △동서울→영월=매일 20여 회(06:30~19:30) 운행, 무정차 3시간, 직행 4시간 소요. △청량리역→영월역=매일 6회(08:00~22:00)운행. 무궁화호(5회) 3시간20분 소요, 새마을호(17:00) 2시간55분 소요. 토ㆍ일요일 새마을호 1회(08:25), 무궁화호 1회(23:00) 증편 운행. △영월→서면(주천행)=매일 8회(05:50 08:30 09:30 11:40 13:40 14:50 17:00 19:30) 운행. 영월교통 033-373-2373

* 숙식 선암마을에는 10여채의 민가가 있지만, 영심이네(033-372-2469) 등 몇 집만 민박을 친다. 마을 안에 식당도 없고, 구멍가게도 없으므로 필요한 물품은 서면이나 주천면 소재지 등에서 미리 구입해야 한다. 청령포 근처에 숙식할 곳이 여럿 있다.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5-06-01 17:51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