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밤…조바심이 문제다불면증 환자 대부분 수면시간보다는 심리적 고통에 시달려규칙적 생활습과 ㄴ지키고 약물치료는 단기적 처방에 그쳐야

[클리닉 탐방] 고려대 안암병원<수면장애 클리닉>
잠 못드는 밤…조바심이 문제다
불면증 환자 대부분 수면시간보다는 심리적 고통에 시달려
규칙적 생활습관 지키고 약물치료는 단기적 처방에 그쳐야


“당장 잠 좀 자게 해 달라”고 하소연하는 환자들을 종종 마주하는 수면장애 클리닉 전문의에게는 환자들을 잘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김린 교수는 단연 이 방면에서 탁월한 의사다. 임재범 기자

불면증 환자들은 밤이 두렵다.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눈을 질끈 감아도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해진다. 낮에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과 주고받은 얘기들과, 회사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머리 속을 끊임없이 오락가락한다. 잡념을 떨치고 잠을 자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정신은 더 또렷해 지고, 또 잠을 설칠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이런 자신에게 부아도 난다. 겨우 잠이 들었어도 금세 깨기 일쑤다. 새벽이 올 때까지 이런 과정을 되풀이 해야만 한다.

불면증, 수면 무호흡증, 기면증, 1주기리듬 수면장애, 알파델타 수면장애, 야경증, 야뇨증, 몽유병, 사지초조증 등 국제수면장애 분류(ICSD) 리스트에 올라 있는 대표적인 수면장애 유형들이다. 최근 15년 새 열 댓 가지가 추가됐다. 모두 100 가지가 넘는다. ‘잠을 못자는 병’이라고 하면 언뜻 불면증만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가짓수도 많고 증상도 다양하다.

우리는 일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면서 보낸다. 잠을 못 자면 살 수가 없다. 밤에 숙면을 못 하면 낮에 제대로 활동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10명 중 2~3명이나 된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사실은 우리들이 잠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이다 보니 치료를 하면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정확한 치료법은 더더욱 모른다. 의대생들이 수면장애에 관한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수면제 남용땐 더 심각한 수면장애 불러
수면장애 분야 국내 권위자 중 한 사람인 고려대 안암병원 ‘수면장애 클리닉’의 김린(52ㆍ대한수면의학회 회장) 교수는 “수면장애, 특히 불면증은 지극히 주관적인 병”이라고 잘라 말한다. 남들이 봤을 땐 코를 골면서 아주 잘 잔 것 같은데도 정작 본인은 “밤새 한 숨도 못 잤다”고 하소연 하기 일쑤다. “수면장애 환자들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잠 못 자는 고통을 실제보다 과장한다는 것입니다. 만성 불면증 환자라도 실제 수면검사를 해 보면 너댓 시간 정도는 잠을 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절대적인 수면량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잠을 못 잤을 때 느끼는 ‘심리적인 고통’이 클 뿐입니다.”

“수면장애 환자들은 평소보다 조금만 잠을 못 자도 ‘이거, 큰 일 났네’하면서 잠을 자려고 별 짓을 다 합니다.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잠을 못 잤다고 초조해 하는 조바심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하는 김 교수는 “잠을 못 자면 삶의 질이 나빠진다”며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수면장애 증상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 직장에서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학생이라면 학습효과가 크게 떨어지거나 선생님으로부터 야단맞기 일쑤입니다.” 사고의 위험성도 있다. 낮에 갑자기 잠이 쏟아지는 기면증(나르코렙시) 환자들의 경우 운전 중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잠으로 잠깐 잠깐씩 핸들을 놓치는 아찔한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잠이 잘 안 온다고 수면제를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약의 잔류효과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만 더욱 힘들어 진다. 정확한 진단을 통해 병의 원인을 밝혀낸 다음 거기에 맞는 치료법을 찾는 게 올바른 순서다.

수면장애 진단을 위해 병원에 가면 먼저 질문지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몇 시에 자고 일어났는지 등을 기록하는 수면일지도 2주 정도 작성해야 한다. 수면 양(量)과 리듬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문진(問診)은 기본이다. 비용은 다소 비싸지만 수면다원검사도 받아 볼 필요가 있다. 병원에서 하룻밤 자면서 뇌파ㆍ근육ㆍ호흡ㆍ심장 등 수면 중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는 진단법인데, 수면 주기ㆍ수면의 구조ㆍ무호흡증 여부 등을 한꺼번에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근육의 힘이 풀리면서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잠이 밀려오는 나르코렙시 증상이 의심될 경우 얼마나 빨리 잠 드는지를 조사하는 수면 잠재기 검사(MSLT)를 한다.

불면증에는 생활습관을 교정하면서 수면 주기를 일정하게 하는 인지행동요법이 주요 치료 방법이다. 여기에 잠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유지시키는 자극조절법과 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을 통제하는 수면제한법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수면 주기 자체는 정상이지만 잠 자는 시간이 늦은 지연성 수면주기증(올빼미형) 환자에게는 아침에 깨운 뒤 강한 빛을 쬐는 광치료를 추가한다. 약물 치료는 불가피한 경우라도 단기적인 처방에 그친다.

“한 달만 치료해도 큰 호전을 보이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수 년간 끈질기게 매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면제를 수년 간 복용한 사람들은 약을 쉽게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치료기간이 그만큼 길어집니다.”

약물치료는 어떠한 경우라도 단기적인 처방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 교수는 “의사가 인내심을 갖고 환자들을 설득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인지행동요법을 잘 쓴다면 약에 찌들어 살지 않고도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불면증이 오래 가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2차 증상으로 발전합니다. 때문에 불면증 환자가 불안장애 치료나 신경 안정제 처방 등 엉뚱한 치료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잠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라
가장 흔한 수면장애 중 ‘학습된 불면증’이란 것이 있다. 우연히 불면증에 걸린 뒤 잠을 자려고 애 쓰다가 만성적으로 못 자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김 교수는 “잠에 대한 스트레스를 떨치고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라”고 재차 강조한다.

“살다 보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며칠 간 잠을 못 자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우리 몸은 회복능력이 아주 탁월합니다. 잠을 조금 설쳤다고 하더라도 활동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잠을 못 잤다 하더라도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는 게 중요합니다. 낮에 보충한답시고 누워서는 안 됩니다.”

** 다음 호에는 <소아 시력교정> 편이 소개됩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입력시간 : 2005-06-15 15:46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