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똥 따먹던 추억 속의 그 나무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보리수나무
보리똥 따먹던 추억 속의 그 나무

보리수나무 꽃이 한창 피어 은은한 향기를 솔솔 내어 놓더니 이제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한다. 보리수나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슈베르트의 가곡에 등장하는 성문 앞 샘물 곁에 서있는 보리수? 아니면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도를 깨우치셨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땅의 진짜 보리수나무는 위의 두 나무가 아니다.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행복한 사람들은 산과 들을 누비며 다니다 보리똥하면서 따먹던 동그랗고 달짝지근하며 붉은색 껍질에 은빛 점이 반짝이는 열매를 기억할 것이다. 그 나무가 바로 우리의 보리수나무다.

그럼 앞의 두 나무는 무얼까.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바로 피나무다. 피나무 종류로 한자로는 보제수(菩提樹)라고 쓰고 ‘보리수’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또 피나무의 둥글고 딱딱한 열매는 염주의 재료가 되어 사찰에서 많이 심는다. 부처님께서 길상초를 깔고 앉아 득도했다는 열대지방에 자라는 불교의 성수 보리수(비팔나무)는 무화과나무속에 속한다. 보리(菩提)라는 말은 범어(梵語)로 보디(Bodhi) 즉 불도(佛道)라는 뜻이다. 이런 나무들이 한자발음이나 불교와 얽힌 인연 등으로 잘못 불리어지고 있는 듯 싶다.

진짜 보리수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우리나라 전국의 그리 높지 않은 산과 들에 자라는 낙엽이 지는 나무다. 관목이라고 하지만 아주 덤불처럼 자라지는 않고 3~4m 높이까지 어느 정도 줄기를 굵게 키우며 자란다. 잎은 평범하며 타원형으로 밋밋한 가장자리는 잔 파도가 이는 듯 구불거린다. 꽃은 5월부터 6월까지 피는데 작은 나팔 같은 꽃송이들이 일제히 피면 나무가 온통 모두 꽃인 듯 보인다.

우유 빛 흰 꽃으로 피어 점차 연 노란 빛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무렵, 산길은 보리수나무 꽃송이들의 향기로 더없이 그윽해진다. 둥근 열매 역시 개성 만점이다. 이렇듯 보리수나무는 모든 식물의 기관이 나름대로 잘 갖추어져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이 나무를 알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잎의 양면과 열매의 겉껍질, 그리고 줄기에까지 은빛 또는 은 갈색이 돈다는 점이다. 마치 반짝이를 뿌려놓은 듯하다.

지방에 따라서 볼네나무, 보리화주나무, 보리똥나무, 볼레낭 등으로 불리운다.

쓰임새는 다양하다. 예전부터 언제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흔히 있던 나무 여서 일부러 키우지는 않았지만 공원이나 정원에 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은빛이 도는 듯한 나무 전체의 때깔도 특색이 있는 등 꽃 모양이나 향기, 열매의 모습이나 쓰임새가 두루두루 좋다. 꿀이 많이 나서 밀원의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열매는 그냥 재미 삼아 따먹기도 하지만 잼을 만들거나 과자나 파이 같은 음식의 재료로 쓰기도 한다. 한방에서도 많이 쓰인다. 생약이름은 우내자라고 한다. 다양한 효과들이 기록엔 나와 있는데 특히 기침, 가래, 천식에 아주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열매를 말려두었다가 가루로 하여 수시로 먹으면 웬만한 기침은 모두 뚝이다. 꽃은 향기로워 꽃차를 만들기도 한다.

보리수나무, 언제나 이 나무를 보면 고향 집처럼 정답고 푸근해 기분이 좋아진다. 비록 꽃은 지고 있으나 시간에 얹혀 흘러 다시 열매로 우리 곁에 다가서려 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5-06-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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