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리의 일본 리포터] 스모계 영웅의 영면


우리 씨름과 같은 일본 전통 국기(國技)의 하나인 스모계에서 지난 7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前오오제키(大關) 다카노하나(貴ノ花, 55)가 5월 30일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카노하나가 영면한지도 1주일이 넘었지만 일본 매스컴은 연일 생전의 그와 관련된 기사를 크게 취급하고 있다.

많은 일본인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은 55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기도 하지만 그가 스모선수로서, 대를 이은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한 모습이 적잖은 감동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스모 선수로서는 작은 체구을 가진 타카노하나는 스모계에 입문한 뒤 때로는 불리한 신체로 인해 좌절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1972년 오오제키로 승진했다. 더욱이 1975년 3월 자신보다 훨씬 거구였던 요코즈나(橫綱) 를 꺼꾸러트리고 처음 우승한 장면은 아직도 대부분의 일본인 기억 속에 각인돼 있다. 어떤 역경하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었고 자신의 아들과 제자들에게도 가르쳤다.

다카노하나는 1981년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치요노후지(나중에 스모 챔피언 요코즈나에 등극)에게 패배하자 체력에 한계를 절감하고 은퇴한다. 이후 자신의 도장 후타고야마 베야(二子山部屋)를 열고 오야가타(감독)로서 두 아들을 요코즈나로 키운다.

미남배우 못지 않은 준수한 외모의 둘째 아들 다카노하나(貴ノ花)는 형 와카노하나(若の花)와 함께 1988년 스모계에 입문하면서 아버지의 예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스모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인 19세에 첫 우승(1994년)을 차지한 차남 다카노하나는 이후 요코즈나에 올라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적 영웅으로 활약했다.

장남 와카노하나는 동생에 비해 체력이 다소 밀리지만 성실히 노력하는 자세로 유명하며 뒤늦었지만 역시 요코즈나의 자리에 섰다. 스모 선수로서 대성한 두 아들의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인은 제일 행복감을 느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만큼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요코즈나의 꿈을 두 아들이 차례로 이뤘으니 그 감회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러울게 없어 보이던 그에게도 불행은 찾아왔다.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31년간 그와 고락을 함께한 후지타 노리코(藤田憲子, 57) 부인과 2001년 8월 이혼한다. 이후 구강암이 발견돼 투병생활을 하던 그는 제자 다카노나미(貴の波)의 은퇴식에는 입원 중인데도 불구하고 직접 참석하는 아랫사랑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다카노하나는 자신의 도장을 담보로 대출받아 은퇴한 제자에게 도장을 만들어 주어 주윗사람을 놀라게 했다.

일본 스모계의 영웅 중 하나인 다카노하나는 스모를 가르칠 때는 엄격하고 혹독하게 아들과 제자들을 다뤘지만 아버지로서, 스승으로서는 따뜻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대했다. 죽음을 앞두고 고인은 스모계를 떠난 아들 형제의 불화를 가장 마음 아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우리 해외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6-23 15:30


성우리 해외칼럼니스트 sunnyinj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