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킬러 부부의 거짓 사랑놀음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의 현실과 영화를 오가는 로맨스에 더 관심

[시네마 타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전문킬러 부부의 거짓 사랑놀음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의 현실과 영화를 오가는 로맨스에 더 관심


때로는 영화 보다 영화 외적인 ‘사건’이 화제를 낳는 경우가 있다. 슈퍼 스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염문으로 숱한 파파라치들의 조명을 받았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이하 <스미스>)가 그런 경우다. 이 영화를 찍는 내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두 사람의 스캔들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었다.

피트-졸리 커플이 거의 모든 장면에 함께 나온다는 걸 빼면 <스미스>는 장점을 찾아보기 힘든 영화다. 서스펜스 스릴러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했지만, 실은 제목만 따온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탈을 쓴 액션 영화다. 할리우드 호사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든 대스타의 스캔들 때문에 환산할 수 없는 광고 효과를 누린 이 영화는 실속 면에서는 한참 떨어진다.

위기의 권태기 부부에 대한 단상
결혼 6년차 부부 존 스미스(브래드 피트)와 제인 스미스(안젤리나 졸리)가 상담을 받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들이 그러하듯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불만과 결혼 생활의 불안감을 털어 놓는다. 더 이상 잠자리도 함께 하지 않고, 서로의 취향과 감정에 대해 무감각해졌다는 고루한 상담 내용 만큼이나 의사의 질문도 지루하기 짝이 없다. 섹스 라이프나 부부관계에 대해 고리타분한 설교를 한참 늘어놓더니 은연 중에 결혼 생활과 미국 중산층 부부의 삶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초반부는 충분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6년 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진다. 이국적인 콜롬비아의 술집에서 그들은 춤을 추며 사랑을 속삭인다. 감미로운 남미 음악은 사랑을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어주지만, 요란한 천둥 소리, 번쩍이는 번개 불빛 위에 어리는 그림자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다. 첫 눈에 반한 연인들 간의 사랑이 로맨틱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일종의 복선인 셈이다.

가장 친밀한 순간에도 타인일 수밖에 없는 남녀 관계를 드러내면서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부부의 위기를 말해주는 셈이다. 부부 간에 흔히 찾아오는 위기, 그리고 상대방과 이웃의 시선을 의식하며 때론 연극을 해야 하는 위선을 이 영화는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유머는 스미스 부부를 자신들만큼 평범한 부부로 알고 있는 순진한 이웃들을 희화화 시키면서 배가된다.

<스미스>에서 유일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 부부’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도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결말로 인해 평이한 스토리 전개의 일부로 퇴색돼 버린다. 부부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이유는 두 사람 모두가 국제적인 조직의 전문 킬러이기 때문이다. 외관상 평범한 주부처럼 매일 저녁 7시마다 남편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제인은 실제로는 태어나서 한번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며, MIT 공대를 나와 컴퓨터 회사에 다닌다는 존은 미술사를 전공한 전문 킬러인 것이다.

재보다 잿밥에 눈 먼
자신이 발굴한 배우 빈스 본을 조연으로 등장시키면서 감독 덕 라이먼(<고> <본 아이덴티티>)은 결혼 생활에 대해 짓궂은 유머를 던진다. 히치콕의 <싸이코>를 리메이크한 거스 반 산트의 <싸이코>에서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이중 인격을 지닌 싸이코 노먼 베이츠의 역을 맡았던 빈스 본은, 이 영화에서 스미스 부부의 결혼 생활을 비아냥대며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혼남 역을 맡았다. 오로지 목소리만 들리는 어머니의 존재와 비정상적으로 전 부인을 증오하는 빈스 본의 모습은 <싸이코>의 싸이코 킬러를 떠올리게 한다.

덕 라이먼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각광 받은 <고>를 거쳐 정체성을 잃어버린 스파이의 이야기를 다룬 <본 아이덴티티>로 성공한 촉망 받는 신예지만 이 영화에서 자신의 활기찬 스타일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 하다. <스미스>는 <본 아이덴티티>에서 보여준 제임스 본드 영화의 박진감과 히치콕 영화의 농익은 세계관을 결합하려 했지만 결과는 기형적인 돌연변이 영화로 나타났다. 히치콕의 탁월한 혜안을 흉내낼 수 없었던 그는 휘황찬란한 액션 장면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그들의 삶이 마침내 들통나고, 우여곡절 끝에 서로를 제거해야만 하는 임무를 받은 두 사람은 무시무시한 전쟁을 벌인다. 부부 싸움을 죽고 죽이는 난투극으로 묘사한 <장미의 전쟁>에 비해 이 영화의 기반은 얄팍하다. <장미의 전쟁>이 주는 시니컬한 메시지는 블랙코미디적인 조롱의 쾌감이 있었지만 <스미스>는 폭력적인 눈요기가 넘쳐 나는 로맨틱 코미디에 불과하다. 특수 요원들이 지니는 각종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킬러의 임무를 완수하고, 또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두 부부는 최소한의 현실 감각마저 상실한 허황된 인물일 뿐이다. 서로를 죽일 정도로 증오하게 되는 과정을 그럴듯하게 보여주는데도 실패한다. 단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재확인하게 되는 계기로서 사랑 싸움을 좀 과격한 방식으로 보여줄 뿐이다.

덕 라이먼은 부부 관계에 대한 몇 가지 재미있는 설정을 깔아놓았던 도입부 설정을 살리지 못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아이러니컬한 부부의 심리를 깡그리 무시한 채 두 킬링 머신이 벌이는 호쾌한 액션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액션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은 <오션스 트웰브>나 <툼 레이더> 시리즈를 연상시키게 만든다. <스미스>는 스타의 기존 이미지 위에 서로를 공격하는 킬러 출신 부부라는 설정을 덧씌웠지만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좌충우돌하는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매력만으로 두 시간 남짓한 상영 시간을 버티는 건 버겁기 짝이 없다. 차라리 현실 속에서 두 스타가 보여 준 외줄타기 로맨스가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장병원(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6-30 15:48


장병원(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