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높은 산에서의 '시원한' 만남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큰산꼬리풀
크고 높은 산에서의 '시원한' 만남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아직 하늘은 개어 있지만 지난 주부터 곧 다가올 것이라고 하는 장마가 정말 코 앞으로 닥쳐왔음이 확실하다. 이런 날은 무엇을 하든 힘이 들고 늘어진다. 왠지 숲의 풀과 나무들도 생기를 잃은 듯 보인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에 적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더운 여름날, 보기만해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식물이 있다. 숲속 계곡 옆에 무리지어 피어나는 남보라빛 산수국도 그러하고 흰 꽃잎이 고운 어수리도 좋다. 큰산꼬리풀도 그런 식물의 하나다. 역시 연한 보랏빛 혹은 하늘빛이 나는 꽃빛이 시원한 탓도 있을 터이고, 쑥 자라 뽑아 올린 꽃차례도 그러하고 무엇보다도 꽃을 피우는 곳이 대부분 산에서 시원하게 높은 곳이기 때문일 듯도 하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큰산꼬리풀은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식물의 이름을 기억해둘만한 이유는 여름 휴가라도 가서 만나는 아름다운 모습에 이름 한번 제대로 불러주기 위함도 있겠지만, 워낙 보기 좋은 탓에 우리 꽃을 심어 키우는 정원이나 식물원같은 곳에서는 아주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큰산꼬리풀은 현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자라는 곳은 지리산을 포함하여 이보다 북쪽, 그중에서도 높고 깊은 산에 주로 난다. 적어도 해발 800m이상 되는 곳에 대부분 분포한다. 키는 다 크면 허리높이쯤까지 자란다. 굵고 튼실한 줄기에 길이가 10cm쯤 되는 긴 타원형의 잎이 마주 달린다.

꽃은 한여름이 되면 그 줄기 끝에 긴꽃차례를 만들어 달린다. 사실 꽃 한송이의 크기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지만 꼬리처럼 늘어지는 긴 꽃차례에 정말 꼬리처럼 달린다. 이쯤 설명하면 이미 이 식물의 이름이 왜 큰산꼬리풀인지 이미 짐작하였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꽃빛이 하늘색이라고도 연한 보라색이라고도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고운 빛의 꽃송이들이 피어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꽃 하나하나는 그리 작고 여리지만 땅속은 아주 튼실하여 굵은 땅속줄기는 목질화 되어 있고 거기에 잔뿌리가 달려 지탱한다.

눈에 잘 뜨일 만큼 흔하게 분포하지도, 그렇다고 부러 찾아다닐 만큼 아주 희귀하지도 않은 식물이어서 사람들에게 잘 언급되지 않은 식물이었는데 요즈음 부쩍 심는 곳이 많다. 고산성 식물들은 낮은 곳에 심어두면 여름철 고온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식물은 습기만 과하지 않는다면 잘 견디는 장점이 있다. 보통은 대규모로 식재하면 효과가 좋다. 줄기가 굵고 길어 꽃꽂이용으로도 적합하다. 이밖에 중풍이나 방광치료약으로 쓰였다는 기록도 있고, 잎은 나물로도 먹는다. 꼬리풀, 구와꼬리풀, 산꼬리풀 등 비슷한 종류의 식물이 여럿 있지만 큰산꼬리풀이 가장 유용하여 많이 키운다,

큰산꼬리풀처럼 이 땅 곳곳엔 아름다운 꽃들이 여전히 피고 지고를 거듭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숲으로 가는 길의 길목에서 많은 이들에게 서늘한 즐거움과 위로를 던져줄 것이다. 말없이 그러나 더없이 곱고 청아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도 설사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문득 만나도 위로일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엮어가고 싶다.

입력시간 : 2005-06-30 16:4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