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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타운] 분홍신
욕망과 집착에 일그러진 인간애
시기와 질투의 낡은 삼각관계·억지공포에 공허감마저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은 아름다워지려는 욕망 때문에 분홍 구두를 신고 나갔다가 저주 받는 소녀의 이야기다. 허영심에 대한 우화이자 교훈극인 동화와 달리, 영화 ‘분홍신’에서의 분홍신은 맹목적인 집착과 남의 것을 탐하는 질시와 투기의 감정이 응축된 대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욕망과 집착은 영화 속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평범한 두 여고생이 지하철에서 발견된 분홍신을 두고 난투극을 벌이는 도입부부터가 그렇다. 서로 먼저라며 신발을 탐내는 두 여고생은 분홍신이 지닌 마성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주인이 바뀌면서 분홍신을 탐하는 이들에게 재앙이 내리는 것이 이야기의 줄기를 이룬다. 이 영화는 질투나 시기가 여성들의 비이성적인 욕망이라는 ‘고정 관념’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여자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탐하기 마련이며, 그러한 욕망이 집착을 만들고 집착이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도식이다. 여고생과 구두, 나아가 여자와 구두라는 관습적인 상황설정은 공포 효과의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영화적인 설득력을 잃게 만든다.

여성의 욕망에 대한 고루한 편견 두 여성간의 질투와 시기라는 대립 구도가 흥미로운 양상을 보이는 것은 주인공 선재(김혜수)와 그녀의 딸 태수와의 관계에서다. 초반부에서 선재는 딸과 가벼운 말다툼을 벌인다. 영화는 딸과 남편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남편을 사이에 둔 딸과 아내의 삼각구도를 암시한다.

남편을 사이에 두고 딸과 아내가 경쟁할 경우 우위를 점하는 것은 대개 딸이다.딸과 남편의 정다운 모습을 지켜보는 선재의 시선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은 무의식적 질투의 대상이 다름 아닌 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딸에 대한 모성애와 충돌하면서 죄의식을 낳는다. 모녀 간의 날카로운 대립관계가 모성애라는 도덕적으로 우위인 감정에 묻히면서 ‘분홍신’의 공포는 길을 잃는다.

뚜렷한 대립 구도 속에서 공포를 자아내야 할 영화는 숭고한 모성애와 질투의 화신으로 묘사된 여성에 대한 편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시작한다. 딸과의 가벼운 말다툼 이후 학원에 간 딸을 데리러 간 선재는 딸을 잃어버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미친 여자처럼 거리를 헤맨다.

딸과의 말다툼으로 인한 죄의식이 모성애로 바뀌는 것이다. 여성에게 부여된 모성애와 질투라는 두 개념은 사회적인 편견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주인공 선재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갖는데 실패하고, 필요에 따라 모성애 넘치는 어머니가 되었다가, 욕망으로 갈등하는 여자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무자비한 살인 기계로 변모한다.

선재의 일그러진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극적 장치들도 크게 기능하지 못 한다. 분홍신에 저주가 씌운 내력을 설명하는 일제 시대 두 여성과 한 남성 간에 벌어진 치정 살해극이 그것이다. 일제 시대와 대구를 이루는 현재에서는 두 여고생, 선재와 태수, 선재의 후배와 선재 등 다양한 여성 간의 관계로 구도가 확대된다.

선재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 남자 주인공 인철(김성수)은 영화의 말미에 여성에 대한 편견에 쐐기를 박는 한 마디(“당탔?결국 발정 난 암캐에 지나지 않아”)를 던진다. 이 결정적 대사는 질투와 욕망의 응결체인 분홍신을 통해 순결하고 고귀한 여성과 발정 난 요부라는 두 개의 범주로 쉽게 여성을 나눈다. 여성주의자의 엄정한 시각이 아니더라도 이토록 단순화한 구분법이 설득력을 얻기는 힘辱?

독창성이 결여된 공포
후반부로 갈수록 ‘분홍신’은 질투와 시기의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원한에 집중하는 동시에 선재의 모성애에 강조점을 두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원한의 실체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낡은 삼각 관계의 정서에 기대고 있는 만큼, 주인공의 모성애 또한 이렇다 할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변화의 도정에 있는 여성성을 공포의 이미지로 활용하기 보다는 여성들 간의 시기와 질투라는 쉰 내 나는 설정을 반복함으로써 고루함의 인상만을 남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놓은 이야기나 이혼과 절교를 하면서까지 홀로서기를 하려는 여성의 의지가 치정극으로 결론지어지는 순간에는 허망함이 밀려 온다. 방향타를 잃은 이야기 뒤에 남는 것은 공포 효과와 스타일 뿐이다. 천장에서 양동이째로 쏟아지는 피, 정체불명의 소녀 귀신, 부지불식 중에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부랑자 노파는 공포 효과를 노린 소품 이상이 아니다.

독창적이지 못한 건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 동원된 다양한 장치들도 마찬가지다. ‘분홍신’은 과거의 공포 영화들, 특히 일본 공포 영화의 스타일을 많이 참조한 듯한 느낌을 준다. ‘장화, 홍련’ ‘여고괴담’ ‘폰’ ‘령’ 등 최근 한국 공포 영화가 일본 공포 영화의 스타일이나 소재를 즐겨 쓰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점은 공들여 궁리했을 스타일이 공포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힘인 ‘상징’이나 ‘은유’로 변모하는 대신 의미 없는 모방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가 보여 준 절박한 모성애,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혈육애를 넘어서는 인간의 편집증과 광기의 판타지를 뒤섞으려는 무모한 혼성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영화들과의 연관성은 장면적 유사성이나 특징적인 스타일에서 보일 뿐이다. 파국을 불러오는 여성 욕망의 실체를 밝히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무산되자 ‘분홍신’은 국적 불명의 스타일만 남은 공허한 공포영화가 되고 말았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


입력시간 : 2005-07-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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