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저물녘, 여행지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 쨍한 사랑 노래/ 박혜경ㆍ이광호 엮음/ 문학과 지성사 발행/ 6,000원
▲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 지음/ 현대문학 발행/ 9,000원
▲ 겨울 선인장/ 권채운 지음/ 문이당 발행/ 9,500원
▲ 그 겨울의 루이스/ 김은경 지음/ 김&정 출판 발행/ 8,500원

휴가 가방을 꾸리면서 읽든, 안 읽든 시집이나 소설책 한 권 정도는 챙겨 가방 한 쪽 구석에 쑤셔넣은 경험을 한번쯤은 했을 것이다. 올 여름에도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여행하며 읽을 만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소설의 경우 여성 작가의 작품만 모아봤다.

‘쨍한…’은 문학과 지성사가 ‘문지 시인선’ 300호를 기념해 출간한 시선집이다. 300호는 1977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가 나온 이후 28년 만으로, 국내에서는 최초다. 우선 이 대목에서 관심이 간다. 100호를 단위로 하는 관례에 따라, 201호에서 299호까지의 시집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 한 편씩을 선정해 엮었다. ‘사랑 시집’인 것이다. 문학 평론가 박혜경과 이광호가 시를 골랐고, 이광호가 ‘연애시를 읽는 몇 가지 이유’라는 해설을 붙였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서정시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면서, 현대적인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현대의 시인들이 사랑이라는 상실의 사건 속에서 어떻게 자기와 타인의 존재를 감각하는 가를 볼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랑에 관해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은 똑같이 생에 대한 새로운 지각에 이르게 된다. 연애시를 읽는 것은 타인의 깊은 내면의 장면들 속에서 자기 생을 들여다보는 모험이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황동규, ‘쨍한 사랑 노래’ 중에서)

‘이상한…’은 2002년 ‘장미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 상’을 수상한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1980년대를 살아온 다섯 젊은이들의 허무한 사랑과 욕망을 그렸다. 작가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시선이 돋보인다. 작품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작가가 ‘질주와 혁명’ ‘질주와 부르주아 모더니티’ 간의 상관관계를 얼마나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이는 우리 시대 한 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질주정(疾走政) 사회로의 변화과정에 대한 보고서라고 평하고 있다.

‘겨울 선인장’은 2001년 단편 ‘겨울 선인장’으로 제4 회 창작과 비평 신인 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은 부권이 상실된 하층 가정과 뿔뿔이 흩어지거나 소통이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하층 사람들의 일상을 과장됨 없이 객관적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족 공동체가 해체된 처연한 상황 속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책임을 방기하고 말초적 욕망을 뒤쫓아 가는 가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순된 삶의 질곡을 보게 된다. 특히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방기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 거리로 내몰린 아내의 기구한 삶이 변모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과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 편에 서서 동시대 삶의 어두운 면들을 작고 깊은 눈으로 다양하게 발굴해 내, 그 현실의 밑바닥을 차분한 어조로 들추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 겨울의…’는 고독한 여성들의 날카로운 자기 응시를 깊이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가 이원규는 작가에 대해 이 시대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천착을 만만치 않은 솜씨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한다. 그의 소설들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소설의 한 주류를 형성해온 페미니즘과 미시담론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지만, 서정이 함축된 문체와 탁월한 표현기교를 통한 형상화로써 그 질량을 더 깊고 넓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07-14 16:44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