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귀한 여름 대표꽃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범부채
화려하고 귀한 여름 대표꽃

그 화려함은 나리꽃을 뒤쫓을 만하고 그 요긴함은 삼지구엽초를 바라보고 있으며, 까다롭지 않아 곁에 두고 쉽게 보기는 붓꽃 못지 않지만 그 만큼 유명해지지 않아 항상 서운해 하는 우리 꽃이 있는데 바로 범부채다.

범부채는 한여름 피어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예전에는 산자락 끝의 풀밭 같은 곳, 혹은 길가, 논둑과 같은 곳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꽃이 예뻐 혹은 약으로 쓰기 위해 심어 키우지는 않고 열심히 캐어낸 결과, 이제는 자생지를 좀처럼 볼 수 없는 귀한 꽃이 되어 버렸다. 중국, 일본, 소련, 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잎은 비교적 넓은 선형의 잎들이 밑부분을 서로 얼싸안고 두 줄로 나란히 포개어져 올라오는데 정말 시원한 부채살처럼 아름답다. 대표적인 여름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범부채는 7~8월 즉 여름이 되면 1m까지도 키를 높이고 그 끝에서 꽃을 피운다. 원줄기의 끝은 한 두 번 갈라지고 각기 그 끝에는 몇 송이씩의 꽃이 달린다.

손가락 한두 마디쯤 되는 크기의 꽃은 밝은 주황색인 데다가 검붉은 점이 점점이 박혀 특별하게 귀엽고 아름답다. 열매의 모양도 봉곳봉곳 올라와 재미난 모양인데 익으면 세로로 벌어지는 삭과이며 속에서 까맣고 윤기나는 종자가 가득 들어 있다.

범부채는 범의 부채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름치고는 호탕하고도 아름다운데, 한여름 피어나는 이 식물의 꽃을 보고 나면 이름보다 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꽃잎의 무늬는 호랑이의 무늬라기 보다는 표범가죽의 무늬라야 옳을 듯 싶다. 이 꽃의 모양과 무늬가 나비와 같다 하여 나비꽃 또는 호접화라고도 하고 그밖에 편죽란, 사간화(射干花), 호선초로 불리기도 한다. 영어로는 까만 열매를 가진 백합처럼 예쁘다 하여 블랙베리 릴리(Blackberry-Lily), 꽃의 무늬 특성을 따서 레오파드 플라워(Leopard Flower)라고도 한다.

예전에 이 범부채의 중요한 용도는 약용이었다. 땅에서 기어 퍼져 나가는 줄기인 지하경이 있는데 이를 캐어 햇볕에 말린 것을 한방에서는 사간(射干)이라고 하며 독성이 있고, 입에 대어 보면 톡 쏘는 매운 맛이 있으며 독특한 향기가 있다고 한다. 주로 염증치료제로 이용되며 감기로 목이 붓거나 아플 때 조금씩 떼어 침으로 녹여 먹으면 좋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역시 독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 민간에서는 이 근경을 다려 여러 증상의 치료에 썼고 뱀이나 독충에 물렸을 때에는 근경을 환부에 붙여 독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어린 싹은 더러 나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역시 독성이 있으므로 끓는 물에 데쳐 오래 담궈 놓았다가 먹어야 한다.

요즈음에는 관상적인 용도로 인기가 높은데 잎과 꽃이 모두 절화용으로 가치가 있고, 키가 큰 편이므로 화단의 뒤쪽에 심어 초록의 잎은 배경으로 하고 그 위에 꽃이 보이도록 배치하면 좋다. 커다란 분에 심어 모양을 만들어도 색다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키우기도 좋다. 토질은 가리지 않는 편이이지만 비옥하고 물빠짐이 잘 되는 사질양토에서 더 잘 자라고, 볕이 드는 양지쪽에 심어야 하며, 중부지방에서도 잘 자란다. 많이 키우고 싶다면 늦은 여름 혹은 초가을 종자가 익는대로 바로 파종하면 이듬해 봄에 싹이 나고 5월쯤 이식하면 당년 여름에 꽃을 볼 수 있다.

범부채는 한 송이의 꽃이 피면 그날 저녁이면 시들어 버리지만 가지 끝에서 갈라진 꽃송이들이 수없이 이어져 여름내 꽃구경이 가능하고, 그 꽃마저 지고 나면 이내 반짝이는 작은 씨앗들이 포도송이처럼 달려 다음 해를 기약한다. 그때는 가을이 온 것이다.

입력시간 : 2005-08-0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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