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가루·말가루에 고추장·된장 등으로 간 해 기름에 지진 이북음식

[문화 속 음식기행] 에세이집<황석영의 맛과 추억>장떡… 궁핍의 시대, 모정으로 빚은 먹거리
찹쌀가루·말가루에 고추장·된장 등으로 간 해 기름에 지진 이북음식

다른 분야와 달리 문학계에서는 ‘신동’이 드물다. 좋은 문학 작품에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녹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값비싼 재료나 현란한 솜씨보다 중요한 것은 먹는 이에게 남겨지는 인상이다.

에세이집 ‘황석영의 맛과 추억’이 붙잡고 있는 화두도 결국은 ‘삶’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미식가로도 알려진 작가 황석영은 맛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과 어두웠던 한국 현대사의 한 자락을 풀어내고 있다.

음식을 소재로 한 다른 에세이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특별히 진귀한 요리나 미식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옆집 소녀가 쥐어 주던 누룽지부터 시작해서 김일성 주석과 먹었던 언 감자 국수, 군대 시절 철모에 삶아 먹은 닭 등 한편으로는 소박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찡한 음식들이 주류를 이룬다. 남도와 제주 등지의 향토음식이나 망명시절 유럽에서 맛보았던 별미 이야기도 살짝 등장한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이다. 노티는 이북 음식으로 기장과 엿기름을 반죽해 번철에 지져낸 간식이다. 맛은 약과와 비슷하다고 한다. 고향의 노티 맛을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은 제목이지만 음식 이름이 낯설어서인지 나중에 지금의 제목으로 다시 출간된다.

음식 관련 TV 프로그램이 그 어느 때보다 많고 웰빙과 미식이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는 요즘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의견은 어떨까. 황석영은 현대에 와서 ‘우리는 모든 맛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한다.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들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본문 중에서) 그러면서 그는 미식가나 식도락가를 ‘맛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지만 사실은 단 하나의 진실한 사랑을 찾지 못하고 있는 돈 주앙처럼 말이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에피소드는 6ㆍ25 전쟁이 끝나고 궁핍했던 당시에 어머니가 부쳐 주셨던 장떡 이야기다. 배급 받은 밀가루에 고추장을 풀어 부쳐내면 된장국과 김치밖에 없는 식탁이 조금이나마 풍성해진다. 배고팠던 시절이라 마냥 좋아하며 먹었지만 나중에 어머니가 정식으로 만든 장떡을 맛보고는 그때의 장떡이 얼마나 엉터리였나를 깨닫게 된다.

이북 음식으로 알려진 장떡은 원래 찹쌀가루나 밀가루에 고추장ㆍ된장ㆍ간장 등으로 간을 하여 반죽해서 기름에 지진 요리다. 지역에 따라 고추장을 넣기도 하고 된장을 넣기도 한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찹쌀가루에 햇된장을 반죽해 마늘, 부추, 깻잎 등을 다져 넣어 쪄낸 다음 햇볕에 3~4일 정도 말린다. 이를 저장해 두었다가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지져 먹는 것이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넣을 때는 장을 그대로 반죽에 넣지 말고 물에 미리 풀어 두었다가 사용하면 편리하다.

개성 지역에서는 햇된장을 아예 장떡 조리용으로 소금을 치지 않고 따로 간수해 두기도 한다. 여기에 찹쌀가루와 다진 쇠고기, 깨, 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을 넣고 반죽해 반대기를 만든다. 그냥 고추장떡보다 더 맵싸한 맛이 난다. 미나리와 부추, 멸칫가루 등을 넣고 담백하게 쪄내는 장떡도 있으며 동그랑땡처럼 두부에 다진 고기를 넣어 만든 것 등 종류도 다양하다.

장떡은 밥반찬으로도 좋지만 비 오는 날 주전부리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다른 부침개가 식으면 맛이 없는 것과는 달리, 식었을 때가 쫀득쫀득하여 더 맛있다.

*장떡 만들기

-재료:

밀가루 2컵,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2작은술, 풋고추 5개, 붉은 고추 2개, 마늘종 1대, 깻잎 10장, 소금 약간, 참기름 4큰술

-만드는 법:

1. 고추는 꼭지를 따내고 둥글게 썰어 씨를 대충 털어 낸다.

2. 마늘종은 연한 부분만 송송 썰어둔다.

3. 깻잎은 흐르는 물?씻고 물기를 털어 낸 후 0.5cm 폭으로 썬다.

4. 분량의 밀가루, 고추장, 고춧가루를 그릇에 담?물을 부어 고루 풀어준다.

5. 4를 체에 걸러 준비해 둔다.

6. 반죽에 고추와 마늘종, 깻잎을 모두 넣고 고루 섞는다.

7. 팬에 기름을 두른 뒤 반죽을 한 국자 떠 넣고 얇게 편다.

8. 한번 뒤집은 후 뒤집개로 꾹꾹 눌러 익힌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8-12 15:4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