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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즐겁다] 부여 궁남지
물 위를 수놓은 붉은 홍련 3,000 궁녀 애달픈 넋인 듯
1만 평 크기 광대한 인공 연못, 격조 높은 백제 미학이 고스란히




황포돛배 떠있는 궁남지.



금강 하류인 백마강을 끼고 자리잡은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이다. 서기 660년 17만 나당연합군이 7주간 밤낮으로 약탈과 방화를 하면서 집들은 부서지고 시체가 풀 우거진 듯하였다는 그 여름에 얼마나 많은 ‘싸울아비’들과 여인들이 이 강변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 갔을까.

3천 궁녀의 슬픈 넋이 떠도는 낙화암
당시 백제의 처절한 마지막 장면을 피눈물 흘리며 지켜봤을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자신도 기단부에 당나라 군대에 의해 ‘대당평제국비명(大唐平濟國碑銘)’이라는 치욕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살아 남아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남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부소산에 쌓은 부소산성은 왕궁과 부여 시가를 수비하던 백제 최후의 보루였다. 백제의 충신들인 성충ㆍ흥수ㆍ계백장군의 넋을 기려 지은 삼충사와 새까맣게 타버린 곡식이 지금도 발견되는 곡식창고를 지나 반월루로 가는 동안 군데군데 띠처럼 쌓아올린 토성의 흔적들을 보게 된다.

나당연합군이 밀려들자 3,000궁녀가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에 오르면 넉넉한 부여 들판이 백마강 너머로 펼쳐진다. 호사가들은 3,000이라는 숫자를 놓고 진위 여부를 따지지만, 이는 단순히 의자왕이 거느렸던 후궁의 숫자가 아니라 당시에 피 흘리며 쓰러져간 수많은 백성들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궁남지 안쪽의 뜬섬엔 포룡정이 세워져 있다.
계백장군과 5,000결사대 출전상.
궁남지 주변의 연꽃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낙화암 아래 절벽을 에돌아 내려서면 꽃다운 혼을 날린 궁녀들이 몸을 던지기 전 스스로 명복을 빌었을 법당이 있다. 고란사(皐蘭寺)다. 창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다. 백제 때 왕을 위한 정자였다고도 하고, 백제 왕실의 내불당으로서 비빈들의 기도처였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이 절집은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되었던 것을 고려 현종 때인 1028년 3,000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지은 것이다.

아담한 법당 뒤꼍으로 돌아가면 고란초 다소곳이 피어난 절벽 아래에는 궁녀들의 눈물인 듯한 석간수가 솟는다. 궁녀들은 이 샘물을 왕에게 바칠 때 고란샘물임을 알리기 위해서 고란초 이파리를 두어 개 띄워 바쳤다고 한다. 속설에 이 샘물을 한 모금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 한다. 그러나 어떤 욕심쟁이는 너무 많이 마셔 결국 아기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으니 한 두 모금으로 만족하는 게 좋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
이런 부여에서 가장 백제다운 유적지를 꼽으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라는 궁남지(宮南池)를 언급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백제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수준 높았던 생활 문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엔 ‘물을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여 주위 물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물 속에 섬을 쌓아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 사람들은 이것을 ‘뜬 섬’이라고 불렀다. 아쉽게도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수로와 물가, 섬이 어떤 생김새로 摸瑩?있었는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1만 평 정도에 이르는 지금의 궁남지는 1965년에 복원한 것인데, 원래 규모의 3분의 1쯤이?한다. 우리에게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잘 알려진 무왕이 ‘큰 연못’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처럼 원래의 궁남지는 뱃놀이를 할 정도로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궁남지는 사계절 인기 있는 곳이지만, 요즘 같은 계절에는 연못을 가득 뒤덮은 연꽃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런데 궁남지엔 백제의 마지막 여름날 백마강으로 몸을 던진 3,000궁녀의 슬픈 넋인 듯한 붉은 홍련이 가장 많다. 이외에도 백련, 수련, 가시연 등 10여 종의 연꽃이 여름마다 활짝 피어난다.

연못 가운데의 ‘뜬 섬’엔 포룡정(泡龍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다. 이는 백제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에 살던 용이 나타나자 의식을 잃은 뒤 무왕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탄생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정자가 있는 뜬 섬은 살짝 하늘로 솟구친 무지개 형태의 나무다리를 건너서 갈 수 있다. 정자에 기대 연못을 바라보면 연못 수면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다 정한 모습이 아로새겨진다.

백제의 문화유적이 즐비한 부여 여행은 문화관광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지는 부여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투어버스 이용요금은 무료지만, 입장료ㆍ유람선요금 등 체험관광 요금은 관광객이 부담한다. 총 6시간 30분쯤 소요. 예약은 충남종합관광안내소(041-830-2523).

* 숙식 부여 읍내에는 대명장(041-835-3377), 미라보(041-835-9988), 아리랑(041-832-5656) 등 숙박시설이 많으나 읍내 외곽으로 벗어나면 숙식할 곳이 마땅치 않다. 백마강변의 백마강식당(041-835-2752)은 장어구이와 백마강에서 잡은 메기로 요리한 매운탕으로 상을 차린다.

*교통 △서해안고속도로→대천 나들목→36번 국도→보령→40번 국도→외산→내산→구룡→부여. 대천 나들목에서 1시간 소요. △경부고속도로→천안분기점→논산ㆍ천안고속도로→탄천 나들목→탄천→40번 국도→부여. 탄천 나들목에서 30분 소요.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


입력시간 : 2005-08-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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