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공식 그대로 따른 짜깁기 쇼크도 서스펜스도 없어 흠

[시네마 타운] <첼로> 인간욕망이 부른 파국의 엘레지
스릴러 공식 그대로 따른 짜깁기 쇼크도 서스펜스도 없어 흠

2005년 여름 한국 공포영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원한을 품은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 그 여자는 과거의 사연 때문에 정신 분열을 겪거나 미쳐가고 있다는 점, 분홍신 가발 목소리 첼로 등 공포를 야기하는 대상물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 <장화, 홍련>이 만든 하우스 호러(폐소 공포증을 자아내는 음산한 집이 공포의 응집체로 등장하는 하위 공포 장르)의 특성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점, 한국 공포의 전통적인 정서인 '한풀이'의 모티프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등이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 전반에서 폭 넓은 유행을 낳았던 '반전 강박증'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올해 여름 공포영화 중 가장 늦게 개봉하는 <첼로>는 이 같은 2005년의 트렌드를 모조리 따르려고 작정한 영화처럼 보인다. 너무 트렌드에 민감한 나머지 영화 전체가 유행 트렌드의 짜깁기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첼로>는 한편으로 검증된 흥행 공식을 이용한 영리한 전략을 짰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존 공포 영화의 후광에 묻어가려는 기획 공포영화의 양산이 어떤 폐해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범과도 같다. 나는 네가 과거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홍미주 일가 살인사건.' 영화 <첼로>에 붙은 이 같은 부제는 말에서부터 일단 가족 공포의 분위기를 풍긴다.

'모종의 사건에 의해 가족 전체가 몰살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드라마 상의 단서를 슬쩍 던지는 셈이다. 첼로와 가족을 덮친 비극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가 결국 이 영화의 제목과 부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전부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 강사 홍미주(성현아)는 번듯한 집과 차, 다정한 남편 준기(정호빈)와 언니를 공경할 줄 아는 시누이 경란(왕빛나)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여자처럼 보인다. 자폐증에 걸린 큰 딸이 유일한 근심거리지만 그마저 쾌활한 분위기 메이커인 막내 딸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단란한 미주의 집에 괴이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성적에 불만을 품은 학교 학생의 스토킹과 음산한 분위기의 하녀가 들어 오면서부터다. 경란은 잘 지내던 남자친구와 파경을 맞고 첫 딸의 병증도 도를 더해가는데다가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거대한 비극이 가족을 덮친다.

<첼로>의 애초 컨셉트는 첼로 음악과 공포의 결합이었다. 하지만 '첼로'는 그럴듯한 공포의 매개를 찾아 나섰다가 우연히 발견한 장치일 가능성이 크다. 자폐아 딸이 켜는 불협화음의 첼로 연주나 음산한 분위기의 배경 음악, 바흐의 원곡을 변주했다는 연주곡 들은 이야기에 착착 감기지 못하는 겉도는 인상을 줄 뿐이다.

여느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공포의 사연을 풀어놓는 것은 결국 주인공 미주의 과거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 실체가 밝혀지는 그녀의 사연 때문에 공포를 위해 매설한 바깥의 이야기 가지들은 모두 의미가 모호해진다.

성적에 불만을 품은 학생이 왜 스토킹에 가까운 언동으로 미주에게 해꼬지를 해야 하는 지, 경란의 남자친구는 어떤 연유에서 급작스럽게 결별 통보를 하는 지, 영화는 설명하지 못한다.

자폐증 첫째와 상대적으로 활달한 둘째 딸이 나누는 자매 애(愛) 또는 질시는 미주의 과거가 현재에 투사된 것인지, 모든 상황이 애매하기만 하다. 시누이가 목을 매달고 아이가 2층에서 떨어져 죽는 상황에서 미주가 보이는 반응도 이해할 수 없다.

과거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핵심이 부상하기보다 드라마의 집중력이 오히려 흐트러진다. 익숙?공포 코드의 합성품 <첼로>의 공포는 한국 공포영화의 익숙한 모티프인 '2등 컴플렉스'를 다시 한 번 차용한다. 등수를 매기는 대상이 학교 성적에서

첼로 실력으로 바뀌었을 뿐 1등을 시기한 2등의 질투심이 비극의 씨앗이 돼 거대한 재앙을 낳는다는 기본 골격은 그대로다. 문제는 공포의 매개가 왜 옆管?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쏙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첼로>는 굳이 첼로가 아니라 그것이 피아노이어도 상관 없고 바이올린이어도 하등 문제되지 않을 이야기다.

단적으로 영화는 극적인 차원에서 또는 영화가 현실과 맺는 관계에서 첼로가 공포의 기원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감독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첼로는 인간의 음역과 가장 흡사한 소리를 내는 악기이고, 인간의 심장에 대고 그 울림과 함께 연주하는 악기"라고. 하지만 감독의 설명도 소재주의의 혐의를 완전히 벗겨주지는 못한다.

최근 한국 공포영화의 약점 증 하나는 너무 고상한 척 점잔을 뺀다는 점이다. 그럴 듯한 이야기를 화려한 비주얼로 포장하는 기술은 좋아졌지만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의 강도는 한참 약해졌다. 하려는 얘기는 많아졌지만 정작 무섭지는 않은 것이다.

삼복더위에 공포영화를 선택한 관객들에게 이런 공포영화가 환영 받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첼로> 역시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그것은 익숙한 공포 코드와 반전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죽만 멀쩡한 모조품에 가깝다.

영화는 미주의 과거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결말을 통해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뒤집어 시선을 끌려 한다. 하지만 쌓이는 공포가 아닌 우발적이고 계기적인 쇼크에만 집착하는 까닭에 그 폭발력은 크지 않다.

더군다나 <첼로>의 쇼크 효과는 동종의 한국 영화들 보다 비교 우위에 있지도 않다. 여기에는 공포도 쇼크도 서스펜스도 없다. 그저 관객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수집한 공포영화의 익숙한 코드들만 있을 뿐이다. 마치 그것은 머리는 하나인데 팔 다리가 따로 노는 기형적인 생물체를 본 것 같은 석연찮음을 남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8-23 14:52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