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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메꽃
무더운 여름, 분홍빛 꽃 달고 싱그럽게



살며시 스며들며 퍼지는 달콤한 아카시아의 향내가 사라져 갈 즈음이면 메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화살촉 모양의 꽃봉오리에 빗살무늬를 한 주름이 가만히 펴지며 아침과 함께 환한 미소처럼 메꽃은 피어난다.

메꽃은 나팔꽃처럼 생겼다. 아니 어쩌면 나팔꽃이 메꽃처럼 생겼다라고 해야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침 강렬한 남보라빛 꽃을 피우는 나팔꽃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지만, 엄밀히 말해 나팔꽃은 우리의 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꽃을 보기위해서 혹은 약재로 이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직접 씨를 뿌려 가꾸지 않고는 우리 강산 어느 곳에서도 저절로 자라지 않는 열대아시아가 원산지인 이방인이다. 그러나 메꽃은 심지 않아도, 가꾸지 않아도, 보아 주지 않아도 우리 곁에서 자라는 우리의 꽃이다.

어쩌면 “저 나팔꽃은 색이 다르네”라고 하면서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르는 메꽃은 심산유곡에 아무도 모르게 홀로 피는 그런 꽃이 아니다. 전철을 타고 구로역 정도만 지나도 철길 옆에서, 조금은 관리를 소홀히 한 잔디밭 한 구석에서, 집을 지으려고 비워 둔 빈터에서, 그리고 논뚝과 들판에서 무엇인가를 감고 올라가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지면을 타고 뻗어 가며 자라는 수줍은 분홍빛 꽃이 바로 메꽃이다.

메꽃은 메꽃과에 속하는 여러 해 살이 덩굴성 초본으로, 유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가늘게 이어진 줄기에 잎이 달리고, 그 잎과 줄기가 연결되는 겨드랑이 사이로 갓난아기 주먹만한 연한 분홍색의 꽃을 피운다. 깔대기모양의 꽃은 꽃잎이 모두 붙어버린 통꽃이다.

하얀 색의 땅속 줄기는 사방으로 내뻗으며 왕성하게 잎을 만들어 키우면서 번식을 위해 부지런히 영역을 확대한다. 이 잎의 모양은 길이가 나비의 네 배쯤 되는 5cm 정도의 긴 타원형으로, 잎 끝은 뭉툭하고 잎의 밑부분은 귓볼처럼 양쪽으로 늘어져있다. 이러한 잎을 달고 있는 잎자루는 잎보다도 더 길어 아주 가늘고 연약해 보인다.

꽃은 아침이 오면서 피기 시작하여 해가 지면 꽃도 함께 진다. 피고 지고의 반복이 유월과 함께 시작하여 팔월이 지나도록 계속되므로 세찬 비가 내려 꽃잎이 오므라져 버릴 때를 제외하고는 여름 내내 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영근 이삭을 늘어뜨릴 즈음에도 여름내 꽃을 피웠던 메꽃은 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 보다는 하얀 색 땅속줄기를 기온도 높고 비도 많은 여름동안 이곳 저곳으로 뻗어 키우고, 겨울엔 그 줄기에 겨울눈을 달고 땅속에서 월동을 한다. 그래서 메꽃은 '고자화'란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결실을 하기도 한다.

그 이외에도 메꽃은 몇 가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메'인데 이 식물 자체를 말하기도 하고, 뿌리 만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또 덩굴성 식물인 연유로 ‘선화'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선복화', ‘돈창초', ‘미화'란 이름들도 가지고 있다.

이른 봄 땅속 줄기에 물이 오를 즈음이면 우리 부모님들 연배에 계신 분들은 이 하얀 줄기를 캐서 밥에 넣어 쪄 먹기도 하고, 불에 구워 간식으로 먹기도 했는데 그 맛이 달콤하고 좋았다고 한다. 어린 순을 잘라 봄나물로 무쳐먹기도 했는데 달콤한 맛에 이끌려 지나치게 먹으면 설사를 일으켜 혼이 나기도 했단다. 전문적인 약용식물은 아니지만 감기, 이뇨, 당뇨병, 혈압, 중풍, 천식 등에도 효과가 있어 약재로도 이용이 된다.

여름비가 그치고 나면 메꽃은 간밤의 빗방울을 몇 개 매달고 어김없이 싱그럽게 다시 피어난다. 여름내 이 일을 되풀이 하다가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더 이상의 꽃 피기를 중단한다. 그리고는 이름조차 잘 알아 주지 않는 우리들에게 화려하진 않으나 편안한 꽃을, 때론 배고픔을 달래주는 하얀 줄기를, 더 나아가 치열한 경쟁 속을 살아갈 삶의 지혜를 전해 주기 위해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겨울 준비를 서두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입력시간 : 2005-08-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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