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 숲은 보라빛으로 물들고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투구꽃
가을의 길목, 숲은 보라빛으로 물들고

가을이 시작된 듯 하다. 이제 막 꽃피우기를 시작한 투구꽃은 국화과 식물일색인 가을 숲속에서 그 독특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신비한 보라빛이며 특이한 모양, 덩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로 서지도 않은 채 비스듬히 자라는 모습 등이 워낙 특별하다. 그래서 이 식물을 한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사와 함께 이내 이름이 궁금해지는데, 투구꽃이란 이름을 듣곤 고개를 끄덕인다.

꽃의 모양이 마치 전장터에서 머리에 쓰는 투구와 같아 보이니 이름과 특징이 잘 연관되어 있는 셈이다.

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 해 살이 풀이다. 다른 물체에 기대어 비스듬히 자라는 것을 바로 세워보면 높이는 1m를 조금 넘기도 한다.

잎은 전체적으로는 둥근 모양이나 손바닥처럼 깊게 다섯 혹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꽃은 9월쯤 피기 시작하여 10월이면 절정이다. 한 송이의 길이가 3cm도 더 되는 꽃송이들이 이삭모양으로 모여 달린다.

투구꽃은 약용식물로 더 유명하다. 초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깊은 산으로 가면 이 식물의 덩이뿌리를 약으로 쓰기 위해 캐고 다니는 약초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식물이야말로 잘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라는 이야기가 꼭 들어 맞는다.

초오는 진통, 진경의 효능이 있고 습기로 인해 허리 아래가 냉해지는 증세를 다스리며 종기로 인한 부기에도 효과가 있어 풍증, 냉증, 신경통, 두통, 임파선염 등과 위와 배가 차고 아플 때 두루 쓰이는 약재다.

그러나 많은 미니라아재비과의 식물들이 그러하듯이 약재로 쓰는 바로 그 덩이뿌리에 맹독성분이 함께 있으므로 전문가의 처방 없이 그저 약초라는 이름만 듣고 복용하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 도 있다.

사약을 만드는 그 유명한 부자 역시 이 투구꽃과 형제가 되는 식물인 것만 보아도 투구꽃의 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 할 수 있다.

한때는 이 식물의 독을 뽑아 내어 화살촉이나 창 끝에 발라 독화살을 만들기도 했다. 독성을 없애려면 입에 대어 마비되는 느낌이 없어 질 때까지 소금물에 반복하여 우려 내거나 증기로 찐다.

투구꽃은 약용으로 뿐 아니라 관상용으로도 효용을 갖는다. 우선 독특하고 큼직한 꽃 모양새와 시원한 보라색 꽃송이가 사람의 눈을 끌고, 기후에 따라 다소 금빛으로, 또는 진한 보라색으로 혹은 흰색이 나타나는 꽃 색의 변이가 눈 여겨 볼만하다.

또 투구꽃의 종류에 따라 활용방법이 달라 지는데, 키가 작아 화분에 심을 수 있는 각시투구꽃, 덩굴성 식물로 지주대를 세우고 둥글게 키워도 좋은 참줄바꽃, 그리고 색이 아주 다른 노랑돌쩌귀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꽃의 모양과 늘어지는 줄기가 풍기는 분위기가 독특해 꽃꽂이 소재로도 개발 가능성이 충분하다. 화단에 심을 때에는 인위적인 정원보다는 낙엽이 지는 큰 키 나무 밑에 퍼져 자라도록 하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독특한 모양과 성분상 특성이 있는 투구꽃은 흔히 식물은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어 버린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이동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조금씩 그 자리를 움직인다.

투구꽃에는 큼직한 괴근(덩이뿌리)이 달리게 되는데, 올해 뿌리는 한해를 충실히 제 몫을 해내고는 그대로 썩어 버리고 이듬해에는 그 옆에 있던 뿌리에서 새싹이 나오게 되니 자연 그 뿌리의 크기 만큼 옆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한자리에서 몇 년씩 양분을 빨아들이는 것 보다는 옆의 토양이 더 기름질 테니 투구꽃으로써는 아주 현명하게 살아가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투구꽃을 생각하면 이 꽃을 처음 만나, 그 모습의 특이함에 감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투구꽃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보니 정말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09-06 18:06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