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다면 멸망하라

[이신조의 책과 나누는 밀어]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사랑할 수 없다면 멸망하라

독서는 연애와 같다.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책과 연애가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종종 어떤 ‘특별한 책’과의 만남은 뜨거운 연애처럼 더없이 아프고 달콤하고 괴롭고 황홀하다. 하여 ‘독서가 취미’라는 말은 틀렸다.

그것은 ‘연애가 취미’라는 말처럼 어불성설이다. 물론 시간 때우기 용 독서, 심심풀이 연애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독서’‘시시한 연애’에 불과하다. 평범함과 시시함을 넘어 특별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다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다 열렬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크나큰 착각이다. 특별한 독서와 특별한 연애를 위해서는 당연히 ‘특별한 능력’이 요구된다.

부지런히 리모콘을 눌러대면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 드라마를, 실시간 나스닥 지수를, 보아의 새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다. 몇 차례 마우스를 클릭하면 박찬호의 승률과 하드코어 음란사이트의 주소와 보건복지부의 출산장려정책에 대해 알 수 있다.

놀랍고 편리하고 즐거운 세상이다. 그러나 어림없다. 겨우 그 정도의 수고와 노력으로 ‘특별함’을 꿈꾼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미안하지만 그렇다.

여기 특별한 소설책 한 권이 있다. 제목은 <소립자>, 한국에선 결코 잘 팔리지 않을 제목이다. 아침 출근시간 지하철 충무로역의 승강장을 오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 중 <소립자>를 읽었을 사람은 그 중 채 두 명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1998년 발표된 미셸 우엘벡(47)의 이 소설은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열렬한 찬사와 격렬한 비난이 그야말로 열렬하고도 격렬하게 동시에 쏟아졌으며, 문화예술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문제작’으로서의 위세를 과시했다.

<소립자>는 문예지 <리르>에 의해서는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반면, ‘콩쿠르 문학상’의 수상후보에서는 아예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란한 가십들이 <소립자>를 우리의 특별한 연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두 남자가 있다. 미셸과 브뤼노. 그들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이다.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쫓아 자식을 져버린 부모 대신 그들은 따로 떨어져 각자의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그(들)는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성인이 된다.

우엘벡이 소설 속 주인공을 자신과 동년배로 설정해 놓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또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소립자>가 프랑스에서 그토록 격렬한 논란에 휩싸인 것은 작가가 주인공들의 (혹은 자신의) 부모세대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엘벡은 부모세대가 쌓아놓은 가치관의 전복을 기도한다. 얼핏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태도로 보이지만, <소립자>의 경우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셸과 브뤼노의 부모세대란 누구인가. 바로 그 유명한 프랑스의 ‘68세대’다. ‘자유’와 ‘평등’과 ‘성의 해방’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던 혁명과 열정과 반항의 신세대다.

프랑스 ‘68세대’는 젊음의 영원한 전설이며, 그들이 부르짖었던 민주주의와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는 모든 측면에서 20세기 후반 서구사회의 근간이 되었다. 미셸과 브뤼노, 그리고 우엘벡은 바로 ‘68세대’의 아이들이다.

자신의 욕망에 정직하며, 자유를 무한히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68세대’ 이후 곧 선(善)이자 진보이며, 정의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엘벡은 <소립자>에서 그러한 가치관에 더없이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독설을 늘어놓는다. 그는 ‘욕망은 그 자체로 고통과 증오와 불행의 원천’이며, ‘한계가 없는 이기심이 바로 개인주의의 속성’이며, ‘분리란 악과 거짓의 또 다른 이름’임을 단언한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얼핏 편협한 보수반동으로의 회귀라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우엘벡은 프랑스 좌우익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이 단순한 퇴행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바로 소설 속에서 생생한 고통의 실존으로 형상화한 두 주인공 미셸과 브뤼노의 좌절과 절망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자가 된 미셸은 섹스를 거부하는 무성애자로, 냉철하고 이성적인 과학의 세계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세상과 단절된 채 무감각한 나날을 살아간다.

인문학 전공의 교사인 브뤼노는 해소되지 못하는 성욕의 포로가 되어 끝없이 쾌락을 쫓지만, 사랑이 제거되고 포르노만 남은 섹스는 그를 자기 환멸에 가득 찬 우울증 환자로 만들어버릴 뿐이다.

형제는 극단으로 상반된 삶을 살아가지만 그들 삶의 황폐함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들은 거리와 상관없이 서로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립자’들인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와도 같은 소중한 사랑이 미셸과 브뤼노에게 찾아오지만, 역시 그들처럼 외로움과 소외를 천형처럼 짊어지고 살아온 연인들은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차례로 세상을 등진다.

미셸과 브뤼노는 끝내 구원 받지 못한다. 브뤼노는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미셸은 자신의 모든 과학적 역량을 발휘한 연구 자료를 남긴 뒤 실종된다.

미셸의 연구를 토대로 ‘유전자 조작에 의해 남녀구분 없이 무성생식을 하며 평화와 유대 속에 불멸하는 신인류’가 탄생하고, ‘현재의 인류는 스스로 멸종’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론이다.

‘사랑 없이 욕망과 쾌락만을 추구해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인간은 자멸해야 한다’는 이 과격하고도 염세적인 메시지는 충격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숱한 오해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 됐든 <소립자>는 우리의 특별한 연인이다. 무엇보다 ‘옳은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소설의 본령을 향해 몸부림치며 핍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셸 우엘벡은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친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끝맺는다.

사랑할 수 없다면 멸망하라- 나의 애틋하고 가련한 연인, 미셸과 브뤼노에게 건배를.

알립니다=그 동안 권민정씨가 집필했던 ‘문학과 페미니즘’은 지난 호로 마치고, 이번 호부터 소설가 이신조씨의 ‘책과의 연애’가 새로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약력: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문학동네 신인 작가상' 수상. 주요 작품 <기대어 앉은 오후> <나의 검정 그물스타킹> <가상도시 백서> <새로운 천사> 등.


이신조 소설가


입력시간 : 2005-09-07 13:43


이신조 자유기고가 adultal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