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시대에 찾는 일의 의미

[출판] 일 한다는 것
불황의 시대에 찾는 일의 의미

일 한다는 것/ 니혼게이자이신문사 엮음ㆍ이규원 옮김/ 리더스북 발행/ 1만2,000원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그건 내 탓이 아닐세, 세상 탓이지.… 일을 한다고 해도 생계수단 그 이상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단지 끼니를 위해 직업을 갖는다면 성실해지기도 힘들겠지.”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에 나오는 대목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업 없이 백수로 지내는 주인공의 왜 일을 하지 않느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이 소설은 러일전쟁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 불황이 사회 전체를 음울한 분위기로 몰아갔던 1909년에 발표됐다.

지금의 일본은 어떤가.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 붕괴로 시작된 장기불황으로 고용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을 하고 있기는 러일전쟁 직후와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에게 회사는 더 이상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평생 직장, 연공 서열 등 일본 경영의 특성은 사라져버렸다.

예전에 비해 일자리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경쟁은 이를 앞질러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때문에 취직을 하는 대신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는 젊은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실정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 사이에서 젊은이들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기성 세대들도 나은 것이 없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조기퇴직과 정리해고라는 냉혹한 현실이 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자. “왜 일을 할까.” 좀 더 나아가 보자. “과연 무엇 때문에 일을 할까”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나” “인생에서 일은 어떤 의미일까” 등등 그 어느 질문에도 자신 있게,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은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제는 일한다는 것, 일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한다는 것이 밥벌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기도 하지만, 일하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100여명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장인들의 일하는 현장을 사실적으로 스케치해 보여주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몇 %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어떻고, 기업들의 신입 사원 채용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등의 통계나 수치는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일과 일생에 대한 백인백색의 인터뷰’라는 부제에 걸맞게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일의 의미에 대해 정답은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하는지, 어떻게 일을 통해 보람을 찾고 있는지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각자가 스스로 일의 의미를 찾게 되면 그것이 바로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2003년 4월부터 2004년 8월까지 같은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모았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장기 불황과 그로 인한 극심한 변화는 우리의 외환위기에 따른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가져온 고통과 변화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대로 우리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어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에게도 똑 같은 무게와 의미로 다가온다.


이상호 편집위원


입력시간 : 2005-09-07 13:46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