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에 인생의 바다를 본 아름다운 멀티 아티스트

[감성25시] 무규칙 이종 예술가 김형태
사십에 인생의 바다를 본 아름다운 멀티 아티스트

김형태씨를 규정할 만한 직업을 고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화가, 가수, 배우, 칼럼니스트, 카운슬러 등 다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화가일 때는 왕성한 작품 활동과 퍼포먼스로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화가로, 가수일 때는 파격적인 인디밴드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무얼 해도 한 가지 역할에 몰두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어느덧 장르와 형식을 넘어선 전방위적 활동을 하는 예술가로 자신을 규정했다. 이른바 ‘무규칙 이종(異種) 예술가’란 직함을 달고서.

무규칙 이종 예술가 김형태(40)씨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불특정 다수에겐 아직 낯선 예술가일 수 있다.

단체전을 제외한 개인전이 올해로 6번째이며,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청춘 카운슬링 ‘너, 외롭구나’ 의 저자, 각종 매체에 개성적인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 처음 무대에 오른 ‘햄릿 프로젝트’란 연극에서 햄릿 역으로 백상 예술대상 인기상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를 소개할 때 황당하고 신기한 혜성같이 나타난 황신혜 밴드의 리더 김형태라고 하면,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꾸미던 인디밴드를 금세 떠올릴 것이다. ‘짬봉’이란 노래의 가사를 떠올리며 말이다.

여섯번째 개인전과 출판기념회

“마흔이 되었어요. 더 이상 의혹과 유혹이 없다는 마흔. 이젠 그간 살아온 인생을 그림으로 표현해 낼 만한 나이가 된 거죠.”

그동안의 화려한 행보가 마치 젊은 시절 방황의 초상화라도 된다는 듯, 그는 마흔이란 나이는 세상의 기득권자가 될 수 있는 나이, 그렇기에 잘못된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아름다운 나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주목할 만한 일들로 눈길을 끌었던 그가 2일 갤러리 정미소에서 여섯 번 째 개인전과 동시에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김형태의 생각도감’ 과 ‘생각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한다’(예담)가 그것이다. 세상, 사람, 집에 대한 개인의 단상은 책으로 출간되고, 함께 그렸던 그림은 전시회로 대중과 만나면서, 3년 동안 함께 있던 글과 그림이 ‘따로 또 같이’ 축하 파티를 연 셈이다.

“집 떠난지 11년만이죠. 화가에서 출발해 여러 장르 예술을 하다, 이제야 그림 앞에 돌아와 섰네요.”

김형태씨의 생각도감 전시회는 인생의 멀고 긴 순례를 거쳐 거울 앞에 돌아와 선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하고 실험적인 그림을 그렸죠. 촉망받을수록 지식에 의존해 난해한 작품을 그리게 되더라구요.

전시회에도 미술계 사람만 오는, 배운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었죠. 평범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유명해 지고 뜨고 싶은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문막의 빈 농가에 들어가 비우고 또 비워냈다.

생각이 많은 이십대의 에너지를 비워내고 출세하려는 욕망도 비워냈다. 처음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순수와의 싸움이었다. 겨우 스물 여덟이었다.

단지 자신을 키운 어머니가 이해하고 좋아하는 그림 한 장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밭을 가는 농부가 그림을 보고 막걸리 한잔 걸치며 인생을 술술 풀어내는 그림 한 장 그리리라 다짐했다.

2년 동안 그렇게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강원도에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최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홍대 앞 발전소란 바에서 음악을 틀며 이중 생활을 했다. 예술 혼을 꽃피울 예쁜 나이 서른이 되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억지로 비워내려는 생각이 더 억지라는 것을. 강원도 생활을 청산하고 붓도 접었다. 서울로 올라와 밴드를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황신혜 밴드다. 생각이 많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칼럼을 쓰고, 간간이 방송에도 출연했다.











가수 이상은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형태형”을 통해 청소년들의 카운슬링을 해줬다.

이듬해 ‘김종휘씨의 문화공감’에서 ‘형태 형 나 어떡해’를 진행하며 전문 카운슬러로 활동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제 홈피를 정리하다가 나 자신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했죠,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떨 때 나를 가장 먼저 찾을까 생각하니 답이 나오더군요.”

무규칙 이종 예술가라는 직함처럼 안 해 본 장르가 거의 없는 그에게 후배들은 자주 상담을 요청했다.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문제까지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카운슬러 역을 도맡아 해 온 셈이었다. “제 홈페이지에 자주 오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해줄 게 없나 생각하다 카운슬링 코너를 만들었죠.”

그의 개인 홈페이지 ‘더김닷컴(www.thegim.com)’엔 진로와 취업을 앞둔 청소년과 20대들에게 날카로운 조언과 충고로 공감대를 얻어온 코너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다.

결코 정겹고 부드러운 조언이 아닌 쓴소리를 일삼는 그의 카운슬링은 의외로 사랑받는 코너가 되었다.

한 가지 역할에 몰두한 삶

“20대는 더 이상 지혜를 일러줄 어른도, 듣기 싫은 소리를 해주는 선배도, 철학을 전수해 주는 은사도, 인성과 감성과 교양을 가르쳐줄 학교도 없습니다.

소비문화의 마약만 맞으며 수경(水耕) 재배된 20대는 그래서 무섭고, 불안하고, 외롭고 답답한 겁니다.”라고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들에게 던진 그의 날카로운 지적과 충고는 네티즌 사이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대는 앉아서 자신의 한계를 한탄하고 용기 없이 못할 거라는 체념부터 하죠. 사람들이 저에게 말하죠.

끼와 재능이 많아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신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타고난 것보단 노력이 더 커요.

대신 비결이 있다면 다가오는 1%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거죠.” 그는 기회가 오면 놓치는 법이 없었다.

연극배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을 잊고 배우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일단 부딪쳐보고 뭐든지 즐기면서 하자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칼럼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 청탁이 들어왔을 때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쓰고 쓰다 보니 다른 매체에서 청탁이 끊이질 않았다. 칼럼을 모아서 책을 내기도 했다. "너 외롭구나"도 상담 사례를 묶어낸 책이다.

김형태씨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때론 그 생각이 넘쳐, 무대에 올라가 배우가 되기도, 후배들에게 쓴 소리를 하기도, 세상과 공유하는 글을 써서 발표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린다.

세상, 사람, 집에 대한 단상을 적은 ‘생각도감’은 자신만의 글이 아니다. 함께 공유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화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번 개인전은 그림을 보며 개인의 경험과 추억을 반추하며 생각을 함께 공유하자는 그의 프로포즈이기도 하다.

세 가지 테마 중 그는 유독 집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의식주 중에 아직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거주한다는 의미의 주죠. 집 문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누구에게나 고민이 되는 문제기도 하구요.”

그가 생각도감의 그림들을 장지에 유화로 그린 것도 이사를 많이 다녔던 경험에서 비롯된다.

“짐을 줄이려고 캔버스 대신 종이에 그림을 그렸죠. 물감을 먹는 종이대신 장지에 그림을 그리니 부드러운 느낌에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부드러운 인상의 그림들을 보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그의 ‘생각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한다’를 읽으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면 마치 한 작가와 메신저를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한국 칼럼 문학이 한 차원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자신의 칼럼을 자평하는 남자.

“유네스코에 보내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시킬 책임”을 느낀다고 재치있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이 남자의 당당함은 그가 마흔이기에 아름다워 보인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숙제’이기에 그는 많이도 아니고 세상을 1센티미터 전진시키면 된다고 믿는 늙지 않는 청년(靑年) 무규칙 이종 예술가인 것이다.

(갤러리 정미소 9/2-9/16 문의 02-743-5378)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9-13 15:51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