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일렁이는 가을의 상징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갈대와 달뿌리풀
바람에 일렁이는 가을의 상징

가을이다. 가을이 깊어 가면 산에서는 억새가 피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며 울겠지만, 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갈대가 가을을 깊이 있게 만든다.

갈대 숲은 가을에 잘 피어나기 시작하여 철새들이 둥지를 트는 겨울이 깊어지도록 내내 우리 곁에 있다.

한동안 많은 이들이 갈대와 억새를 혼동하였지만, 이제 대부분 이를 구별하여 말한다. 가을 들녁에서 혹은 산정에서 무리지어 자리 잡고서는 튼실한 대를 키우고 꽃을 피워내기 시작하여 온 산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겨울의 문턱에 다다를 때까지 그 허연 머리채를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며 서있는, ‘아, 으악새 슬피운다’의 주인공이 억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즈음에서 무리 지어 보다 진한 갈빛으로 자라는 것이 갈대다.

자세히 보면 억새는 작은 꽃차례들이 마치 먼지 털이개처럼 같은 길이로 한자리에 달리는 반면, 갈대는 꽃차례의 길이가 길고 짧아 꽃이 달리는 모양이 서로 다르다.

식물분류학적으로야 더 복잡한 구조상의 특징이 있지만, 쉽게 구별하려면 자라는 곳과 꽃차례 모양을 보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꽃의 모양이나 물가에 자라는 것은 갈대와 똑 같지만 자라는 곳이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낙동강이나 한강, 임진강 하구 같은 곳이 아니라 산에 가면 맑게 흐르는 계류에서 모여 자라는 풀이 있다.

바로 달뿌리풀이다. 갈대와 달뿌리풀은 아주 유사한 형제식물인데 생태적인 특징은 다르다. 달뿌리풀을 쉽게 구분해 내려면 맑은 물에 자라면서 땅 위로 지는 줄기가 이리저리 뻗고(마치 물을 건너듯) 그 마디 마디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을 찾으면 된다. 갈대에는 이런 땅 위로 기는 줄기가 없다.

갈대는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늦여름에서 꽃은 피기 시작하여 그 자리에서 그대로 열매가 익어 겨울 내 간다.

하긴 화려한 꽃잎을 가지지 못한 수수한 꽃들이다 보니, 누구 하나 갈대에 꽃이 피었는지 열매로 익어가는지 눈여겨 보아주는 이는 드문 듯 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물가에서 가을을 제 계절로 삼아 자란다.

주로 습지, 바닷가, 호수 주변의 모래땅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억새와 달리 대부분의 갈대는 멀리서 바라보게 되어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 잘 모르지만 3m정도로 높이 큰다. 철새들이 안전하게 쉬기에 아주 적당한 높이다.

줄기엔 마디가 있고 속이 피어 있으며 잎은 길쭉한데 잎이 달리는 자리엔 잎집이 줄기를 싸고 있고 털이 나 있다.

갈대를 줄여 흔히 갈이라고 부르고 한자로는 노(蘆) 또는 위(葦)라 한다. 생약이름도 이렇게 부른다.

어린 순은 먹을 수 있고, 이삭은 빗자루도 만들고, 줄기를 잘라 삿자리를 만든다. 약으로도 긴요하게 쓰이는데 잎, 줄기, 뿌리를 각각 이용해 주로 염증이나 독을 없애고 열을 내리는 등에 사용된다.

그리스 신화에도 갈대가 등장한다. 님프인 시링크스(Syrinx)가 목신인 판(Pan)에 쫓기다가 갈대로 변하였고, 판은 이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그녀를 그리워하며 불었다고 하여 갈대를 음악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바람에 슬피 우는 것은 억새(으악새)가 아닌 갈대?

흔히 여자의 마음을 갈대라고 하지만, 바람이 잘 타는 물가에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얼마나 굳게 그 땅을 지키면서 생명력 강하게 살아가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정말 억세게 살아가는 것은 억새이기도 하지만 갈대도 이에 못지않다. 정말 세상은 갈대처럼 작은 바람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움직이지만, 자기 자신은 뿌리는 잊지 않고 강건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10-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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