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체코의 시대유감

[영화되돌리기] 프라하의 봄
1968년, 체코의 시대유감

파리에 이어 프라하까지, 대한민국 TV 브라운관 속 러브스토리가 점점 국경을 넘고 있다. 특히 체코 프라하는 우리에게 낯선 동유럽의 풍광과 기품 있는 중세의 아름다운 자태를 함께 지니고 있는 곳이라 상투적일 법한 러브스토리를 조금은 참신하고 이국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있는 프라하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높은데, 최근에는 주인공들이 식사를 하던 레스토랑(하나브스키 파빌리온, Hanavsky Pavilion)이 눈길을 끌면서 연인들 사이에서 필수 관광코스로 꼽히기도 했다.

앞으로 새로운 연인들의 성지가 될 지도 모를 체코의 프라하. 하지만 사실 프라하는 60년대 격동의 현대사를 겪어낸 자유와 혁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오랜 공산주의 사회였던 체코 사회에 불어 닥친 자유, 민주화 개혁 운동, ‘프라하의 봄’이 시작된 곳, 그리고 ‘프라하의 봄’이 시작된 그 해 러시아 탱크가 침공해 체코인들을 짓밟은 곳이 바로 체코의 수도 프라하였다.

영화 ‘프라하의 봄’은 바로 이러한 체코의 슬픈 현대사를 연인들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체코 망명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미국의 명감독 필립 카우프만이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은 체코 공산당 중앙 위원회 서기장으로 임명된 알렉산드 두브체프가 인간적인 얼굴을 한 사회주의로의 개혁을 감행하던 196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 의해 점령되고 이후 소련에 의해 공산화가 되었던 체코. 시간이 흘러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커지면서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는 68년 당시 수만명의 인파가 집회를 열며 새로운 시대를 꿈꿨다.

바로 그 시절, 영화의 주인공 토마스는 조국이 처한 역사적 무거움을 연인들과의 섹스를 통해, 그녀들의 풍만한 가슴에 그리고 비밀스런 그녀들의 질 속으로 훌훌 떨쳐버리는 인물이었다.

그를 이해하는 유일한 여자 사비나는 조국에도 남자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한 남자에게 결코 얽매이지 않는 만큼 조국 체코도 그녀에게는 한 갓 잠시 거쳐 간 여행지일 뿐.









하지만 토마스의 또 다른 연인 테레사는 남자에게도 조국에게도 정착하고 싶어하는 정숙한 여인이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격정적인 사랑에 홀려 연인에서 부부의 연을 맺지만 매사 진지하고 심각한 그녀에게 모든 삶이 가벼운 토마스는 언제나 이해불가한 인물이다.

역사의 무거움이 더해질수록 더욱 음탕한 바람둥이가 되어가는 토마스와 그 무거움에 짓눌려 헤어나오지도 그렇다고 토마스처럼 한껏 가벼워 지지도 못하는 테레사.

체코 역사가 이념에 짓눌려, 정치적 술수에 억압되어 갈수록 그 둘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

영화 속 프라하는 존재의 무게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세 명의 주인공이 각자 삶의 길을 찾아 헤매는 안개와도 같은 모호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새벽 안개 낀 블타바강과 강을 가로지르는 희미한 카렐교, 그리고 혁명 인파로 가득찬 흑백의 바츨라프 광장. 이 곳에서는 로맨스도 격정적인 애무도 환희와 열정 대신 불안과 혼돈으로 느껴진다.

이 시대를 겪어낸 이후 비로소 1989년 프라하는 진정 봄을 맞는다. 자유를 열망하던 체코인들이 결국 공산주의를 몰락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존재의 가벼움에 집착해야만 했던 토마스와 무거움을 견뎌내야 했던 테레사, 그리고 가벼움을 통해 자유를 찾아나선 사비나는 과연 ‘프라하의 봄’을 만날 수 있었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10-17 16:54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