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는 없다

[이신조의 책과의 밀어] 리영희 作, <대화>
'절대'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인 공립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국조회’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대략 12년 동안) 방학 때를 제외한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네모 반듯하게 종으로 횡으로 열과 줄을 맞춰서면, ‘국기에 대한 경례’로 애국조회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애국가를 불렀고 마지막엔 교가를 불렀다.

비가 내리거나 하면 장소는 체육관이나 강당으로 바뀌기도 했고, 그것도 아니면 교실의 스피커나 티브이 수상기를 통해 조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일이다.

애국조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도 기억할 것이다. ‘훈화’라는 말 안에 이미 ‘말씀(話)’이란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주임이나 교무주임은 언제나 ‘다음으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라는 부자연스러운 존칭어를 썼다.

또한 마지막이 아니면서도 ‘에 또,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하고 이어지던 교장의 ‘마지막 말’은 단연 애국조회의 백미였다. 몇 번이고 강조하고 당부하고 덧붙였으니, 그 말들은 제법 중요한 말들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을 계도하고 선도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이상적인 교육의 지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기억력이 나쁘다거나, 그 당시 걷잡을 수 없이 반항심에 사로잡힌 문제아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애써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된 조회의 훈화 중 그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어떤 내용의 말들이었는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기억이 나지 않음에도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기초 질서를 잘 지키는 것과 단정한 외모와 예의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물자를 절약하고 저축을 습관화하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저마다의 특출한 소질로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순국선열들이 흘린 피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신발 끝으로 운동장에 의미 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옆 반 친구에게 눈길을 주면서도, 우리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순진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훈화를 경청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 어렴풋이 기억은 날지언정 아무 것도 진정으로 가슴에 남아 있지 않다.

거창한 훈화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곧잘 윗세대들의 ‘고생담’이나 ‘무용담’을 듣는다. 그것은 주로 전쟁과 가난(혹은 이데올로기적 투쟁과정)을 배경으로 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역경의 체험담이다.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통과해온 사람들 중엔 ‘내 얘기는 장편소설감’인 경우가 많기도 하다. 그 중에는 과연 생생한 역사적 증언도 있고,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도 있으며, 감동과 교훈을 주는 휴먼 스토리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생담과 무용담이 ‘내가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한 끝에 이러한 것을 이뤄냈고, 너희들은 편히 그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감사히 생각하라’, ‘불평불만하지 말고 호강하는 줄 알아라’식의 메시지를 넘어 결국 ‘그러니 마땅히 나를 대접하라’는 결론에 이를 경우, 그것은 너무나 교육적이지만 결코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애국조회의 훈화와 별다를 게 없어진다.

조회의 훈화도 드라마틱한 고생담과 무용담도 ‘대화’는 아니다.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일 뿐이다. 그 아무리 훌륭한 교훈과 눈물겨운 체험담이라 해도 그것이 ‘권력’이 된다면, 타인을 억압하게 된다.

리영희(1929 - ), 한국의 진보사상을 이끌어 온 노학자. 잘 알려진 대로 ‘사상의 은사’, ‘지식인의 사표’로 불리며 ‘한국현대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마지막 저서가 될 거라고 예감하고 있는 책이 바로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그의 회고록 <대화>이다.

리영희는 군琯뗌煐섭쩔?의해 ‘의식화의 원흉’으로 낙인 찍혀 언론계와 대학에서 두 차례씩 쫓겨나는 등 핍박과 탄압을 받았다.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등은 너무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는 모두 9번의 연행 과정에서 3차례의 옥고를 치르며 ‘야만의 시대’를 혹독하게 통과해왔다.

그의 이런 이력은 그가 누구보다도 교훈적인 훈화와 역정의 무용담을 들려주기에 걸 맞는 인물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말에 고개를 조아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회고록의 제목은 <대화>다. 그는 자신의 삶과 사상과 고뇌로 아무도 억압하려들지 않는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건강 악화로 저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형식으로 씌어진 <대화>는 구술기록을 정리하여 원고지 2,700매에 달하는 초고를 완성하는 데만도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고향인 평안도에서의 어린 시절, 서울에서 유학하며 체험한 일제 말기, 그리고 해방과 한국전쟁, 그 광기와 혼돈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그가 겪은 비극과 절망.

그리고 분단 이후 암흑의 터널 같은 군사정권 시절을 언론인과 학자로 살아오며 그가 갖게 된 신념과 깨달음이 우리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소용돌이치며 700페이지가 넘는 책장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렇게 <대화>는 독자와 ‘대화’한다.

리영희는 ‘지식만 있고 의식이 없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칠십 평생 추구한 것은 오직 ‘진실’이었고, 분명히 깨달은 것은 ‘절대’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것이라 해도 ‘절대적’이라면 그것이 바로 ‘악’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절대’를 필요로 하는 것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확실하고 완전한 것에 의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절대적’인 무언가를 손에 넣게 된다면, 어쩌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리영희는 이 책을 50년 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해온 ‘존경하는 아내 윤영자’에게 바쳤다.


소설가


입력시간 : 2005-10-18 15:17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