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바람에 슬픔이 일렁이듯…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솔체꽃
가을 산바람에 슬픔이 일렁이듯…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리고 가을은 가을대로 산야에 피어나는 꽃들에 특색이 있다. 가을에 피는 꽃들은 대게 그 꽃빛깔도 서늘하다.

원색의 꽃빛에 아주 고습스런 중간톤을 섞어 놓은 듯, 혹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자연스럽에 배합해 놓은 듯 오묘하고도 멋지다.

때론 진보라빛 강렬한 용담꽃들이 마치 점을 찍듯 피기도 하고 샛노란 산국이 흐드러지기도 하지만 이 꽃들마저 적절히 바래고 물들어가는 잎새들과 어울어져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초가을 산행길에서 만나는 솔체꽃도 그러하다. 하늘빛과 연보라빛이 다 느껴지는 작은 꽃들이 모여 자그마하고 둥근 꽃차례를 만든다.

그래서 많은 꽃들이 모인 꽃차례가 언뜻 보면 한 송이의 꽃과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모여 있는 작은 꽃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있다.

일정하게 대치되는 꽃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가장자리에 달리는 꽃들은 5갈래, 안쪽에 달리는 꽃들은 4갈래. 한 꽃들이 이리 달리 나뉘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산청에서 바람따라 일렁거리는 솔체꽃 무리를 만나거들랑, 처음에 위에서 그 조화롭게 개성있는 모습을 감상하고, 그 다음엔 자세를 낮추어 옆에서 바라보자.

부드러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꽃잎위로 마치 꽃의 작은 용정들이 세워놓은 안테나처럼 올라와 있는 수술의 모습과 꽃잎이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다. 이 꽃들은 여름이 갈 즈음 피기 시작하여 제법 오랫동안 볼 수 있으며 가을이 갈 무렵 꽃도 지고 열매로 익어간다.

솔체꽃이란 다소 개성있는 이름은 잎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력하다. 잎이 솔잎처럼 체를 친 듯 가늘어서 붙은 이름이라나.

그런데 키가 허벅지 높이 쯤 자라는 솔체꽃의 잎들도 사실은 변화가 많은데, 뿌리 근처에 딸리는 잎들은 깊이 패인 톱니가 있을 정도이며 이들은 꽃이 필 즈음이면 사라지고, 줄기에 달리는 잎은 긴 타원형이 아주 깊이 갈라진 듯 한데, 줄기의 위로 올라올수록 더욱 깊이 갈라지게 된다.

산토끼꽃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고 중부 이북의 높고 깊은 산, 하지만 볕이 드는 곳에 자라므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풀은 아니다.

비슷한 자매식물들이 몇 있는데 잎에 털이 없으면 민둥체꽃, 잎이 깃털처럼 아주 더욱 잘게 갈라지면 체꽃, 뿌리에서 나온 잎이 꽃이 피어도 남아 있고 꽃받침에 가시같은 침이 있으며 이름도 멋진 구름체꽃이다.

유명한 식물은 아니지만 그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는 이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화단에 무리지어 심어 놓기도 하는데 낮은 곳에서는 웃자라면 줄기가 버티지 못하고 스러지기도 한다.

두해살이 풀이므로 심어 놓으면 만년 자라는 것이 아니고 그 해 살았던 것의 일부는 죽고 일부는 새순이 나기도 하고 그러니 제대로 키우려면 씨앗관리도 해야 한다.

한방에서도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생약이름을 山蘿蔔(산라복)이라 하고 꽃을 쓰는데 주로 체내 열을 다스리는 여러 증상에 처방한다고 한다.

솔체꽃에는 산골 소년을 사랑한 요정이 상처입은 소년을 치료해 주었고, 건강을 되찾은 소년은 요정의 사랑을 알지 못한 채 마을의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자 슬픔이 깊어 죽어간 요정이 있던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일까.

파란 하늘을 이고 가녀린 줄기로 바람따라 일렁이며 피어나는 솔체꽃의 꽃송이 속엔 슬프리만큼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과 신비로움이 다 담겨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10-18 17:11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