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독에 빠진 몸과 마음 치유

[전문클리닉] 다사랑병원 <여성 알코올 의존증>
술독에 빠진 몸과 마음 치유

우리는 종종 술을 마신다. 직장이나 가정 등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데 술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술을 마시는, 아니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알코올 중독자들이다. 처음에는 주량을 조절하면서 서너 잔 정도 즐기던 술이 자꾸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알코올 내성(耐性)이 생겨 한 병, 두 병으로 점차 늘다가 결국에는 알코올 의존 상태가 되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금단증상으로 또다시 술을 찾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술에 유달리 관대한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알코올 중독 문제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최근들어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드는 여성 인구가 급증하고 있어 머잖아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코올질환 전문병원 다사랑병원(www.dsrh.co.krㆍ경기 의왕 소재)의 이무형(32) 원장은 “남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 비율이 전 국민의 6~10% 선인데 비해 여성 환자는 그 절반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증가율은 폭발적”이라며 “최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여성들은 신체 구조상 남자보다 술에 더 취약하다. 남자보다 체내 수분 비율이 낮은 반면 체지방 비율은 더 높기 때문인데, 같은 몸무게의 남ㆍ녀가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혈중 알코올 수치는 여자가 더 높게 나온다.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들 확률이 그만큼 더 높다는 얘기가 된다. 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성차별 관행으로 병에 걸리더라도 치료를 방치당하기 일쑤다.

남자들이 발병하면 곧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기 때문에 치료에 적극 나서는 것과는 달리 여성이 발병하면 가족들도 혹시라도 외부에 알려질까봐 쉬쉬하다가 병을 키우는 사례가 흔하다.

알코올 의존증이란 병은 수렁과 같아 일단 걸려들면 여간해서는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알코올 중독이라고 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하면서 손가락질하는 인식이 퍼져있어 환자들이 치료를 꺼리는 데다가 병의 특성상 증상이 깊어질수록 병에 대한 자각증상이 없어지기 때문에 치료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와 관련, 이 원장은 “환자들도 처음에는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인정하고 나름대로 치료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병세가 말기로 갈수록 자기방어 본능이 일어나 ‘이건 내 탓이 아니라 주변사람 탓’ 이라면서 발병 사실을 자꾸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본인 의지와 더불어 주위 도움 절실

따라서 “알코올 의존증은 환자 본인의 의지만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고 말하는 이 원장는 “가족들이 도와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인다.

“처음에는 무던히도 참아주고 도와주던 가족들이 ‘그렇게까지 인간적으로 호소했는데 또 술을 먹느냐’면서 환자에게 2중의 압박을 가하기 일쑤입니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원장의 설명처럼, 알코올 의존증 치료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결과적으로 뇌에 이상이 생겨난 병이기 때문이다.

술을 먹게끔 했던 원인을 찾아내고 술 없이도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치료가 된다. 치료는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병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한 뒤 이에 대한 대처요령을 터득함으로써 또다시 어려움과 부닥쳤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알코올 의존증 치료법은 병원이나 의사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다사랑병원의 경우에는 여성전용 공간과 3개월 과정의 치료 프로그램을 갖추고 약물 복용과 상담, 교육, 단체활동, 취미생활 등 다양한 방법을 복합적으로 쓰고 있다.

환자들이 병원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치료는 해독이다. 술독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에 영양분과 수분을 보충해 주는 과정으로, 길어야 2주 정도지만 환자들은 금단증상으로 불면이나 불안증은 물론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시간과 장소, 사람을 잘 못 알아 보는 지남?장애가 나타날 수 있고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 원장은 설명한다.

남성들은 78%가 알코올 의존증이 1차증상인 데 반해 여성 환자의 66%는 우울증에 먼저 걸린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신 술 때문에 2차 증상으로 나타난 경우다. 여성 알코올 의존증 치료도 이런 발병 원인과 특성을 감안하고 있다.

남편과의 대화방법, 시댁과의 관계개선, 자녀교육 지도 등을 통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독서 발표, 요리강좌, 원예치료, 피부관리법, 요가, 스포츠댄스등의 과정을 통해 취미를 가꾸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치료 기간 중에는 약물도 적절하게 쓴다. 약물은 술에 대한 욕구를 떨쳐내는 효능을 가진 ‘항갈망제’라는 것인데,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금주 후 사용하면 10명 중 4명 꼴로 효과를 본다”는 설명이다. “3개월간의 치료 프로그램을 끝마치더라도 끝이 절대 아니다” 는 이 원장은 “알코올 의존증이 의심되거나 걸린 경우 가까운 알코올 상담센터를 찾거나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에게 안내를 받으라”고 충고한다.

사진설명 : 경기 의왕에 있는 알코올질환 전문병원 다사랑병원의 이무형 원장이 여성환자에게 알코올 의존 증상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설명 : 다사랑병원의 여성 전용 관리병동의 내부 모습. 알코올 의존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처음 머무는 관리병동이지만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출입문이 비밀번호에 의해 출입이 통제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일반 병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게임중독증도 알코올 의존증과 무관치 않아요”

“우리나라에 알코올 정책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술 소비량을 조절할 수 있는 주세(酒稅) 정책도 그렇고 판매 규제도 그렇고, 유럽이나 북미 국가에 비해 너무 느슨합니다.

병의 악화를 막고 후유증을 없애기 위한 2, 3차 예방은 말할 것도 없고 유병률 감소에 초점을 두는 1차 예방부터가 잘 안 돼 있습니다.”

“치료비의 70% 정도를 보상해주는 북미와 달리, 국내에는 알코올 의존증 치료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다 보니까 병원에 올 때쯤이면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다사랑병원 이무형 원장은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당장 돈을 벌어야 하다 보니까 중도 포기도 속출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또 최근의 게임중독 만연 현상도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양산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술과 담배, 게임중독증은 서로 연관된 것입니다.

뇌를 자극하여 순간적 충동을 일으키거나 현실을 회피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아주 비슷합니다. 따라서 어릴 적 게임중독에 빠졌던 아이는 커서 술이나 마약에 빠질 확률도 더 높습니다.”


송강섭 의학전문 기자


입력시간 : 2005-10-25 11:28


송강섭 의학전문 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