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나 아프다

[이신조의 책과의 밀어] 필립 샌드블롬 作, <창조성과 고통>
나는 너무나 아프다

행복이나 기쁨은 그렇지 않은데, 불행이나 고통은 참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한평생 기쁨의 순간과 고통의 순간은 결코 공평하게 반반씩 균형을 이뤄 찾아오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로병사의 수순을, 죽음의 숙명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모두 패배한다.

그러므로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괴로움이나 고통을 통해 인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병자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필립 샌드블롬의 <창조성과 고통>은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저자인 필립 샌드블롬은 저명한 외과 의사이자 대단한 예술 애호가로,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 이면에 감춰진 질병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이 품고 있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표하고 있다.

질병의 고통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아무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제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 해도 질병의 고통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은 정신적인 면에서나 육체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예민하다고 여겨진다.

정확히 측정하여 수치화할 수는 없겠지만 예술가들은 평균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다. 그것이 선천적인 재능에 의해서건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건 그것은 분명 특별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들은 질병의 고통에도 특별하게 반응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 고통을 창조의 거름으로 삼아온 것이다.

‘열정의 화신’으로 불리는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뒤 젊은 시절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후 척추와 골반이 훼손되는 치명적인 합병증까지 겹쳐 그녀는 평생 삼십 여 차례의 수술을 받게 된다.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감내하고 척추와 다리에 철심을 박고서도 그녀는 맹렬하게 그림을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남편이자 멕시코 최고의 화가로도 유명한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과 갈등 역시 그녀의 작품세계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칼로가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그녀의 작품, 특히 여러 편의 자화상 속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온몸에 못이 박혀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척추는 부서진 기둥으로 묘사되었고, 통증으로 짓무른 발가락에선 피가 흐른다. 칼로의 자화상은 단순한 자기 연민의 소산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그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자신만의 강렬한 예술혼을 포착해냈다.

결국 한쪽 다리를 절단한 칼로는 침대에 누운 채로 죽기 직전 자신의 마지막 전시회에 참석했다.

질병으로 인해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예도 있다. <사계>로 유명한 작곡가 비발디는 애당초 신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천식을 앓고 있었고, 심한 기침으로 인해 미사를 제대로 주관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교회 음악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 뒤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로 들어선다.

화가 마티스는 40대에 접어들도록 예술과는 무관한 법조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그가 충수염으로 인한 합병증 치료를 위해 1년간 요양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취미 삼아 그리기 시작한 그림에서 그는 자기 인생의 진정한 빛을 발견했다.

늦은 나이에 찾아온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그를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거장의 반열에까지 올려놓았다.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슈만은 세균감염으로 인해 손가락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손가락이 없어도 작곡은 할 수 있다’며 작곡을 통해 끊임없는 예술혼을 불태웠다.

극단적으로 단순하고 순수한 미를 추구했던 화가 몬드리안은 삼원색과 직선의 분할만으로 추상미술의 새 장을 연 장본인이다.

그의 그림에서도 엿볼 수 있듯, 그는 강박적인 결벽증과 까다로운 정리벽을 가지고 있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는 파가니니는 어렵기로 소문난 곡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것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그것은 그가 팔과 손의 관절이 과도하게 유연한 ‘앨러스-단로스 증후군’이라는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토벤 역시 예술가들의 질병을 논함에 없어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는 그가 왜 위대한 인간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반 고흐, 도스토예프스키, 휠덜린, 니체 등이 고질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렸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볍게는 우울증으로부터 심각하게는 자살시도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겪은 정신질환은 그들의 작품 속에도 반영된다.

우리는 환청에 시달리다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의 초상화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간질 발작에 대해 알고 있다.

<히페리온> 같은 명시를 남긴 휠덜린은 평생 정신병 수용소를 들락거렸고,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다량의 최면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극심한 불면증 환자였다.

성공한 예술가라고 해서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르누아르는 불행한 삶을 살다간 대부분의 동료들과는 달리 살아 있는 동안 부와 명예를 누렸다.

밝고 화사한 그의 작품들에서 고통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지독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말년에는 손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심한 통증으로 인해 붕대로 붓과 자신의 손을 동여맨 채 그림을 그렸다. 극심한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생기발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 책을 예술가들의 숨겨진 비화나 희귀병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인간은 누구나 질병의 고통을 겪는다.

인간은 누구나 아프다. 그러나 아프다고 다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이 어떤 병을 앓았고, 어떻게 고통스러워했으며, 그 질병에 맞서 싸워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알게 되는 것은, 당연히 더욱 더, 그들에게, 그들의 작품에 감동받기 위해서다.

최첨단의 의학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치료법이 개발되지 못한 경피증이란 희귀병을 앓다가 숨을 거둔 화가 파울 클레는 말했다. ‘나는 창조한다. 울지 않으려고.’


소설가


입력시간 : 2005-10-25 16:51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