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슘 아홉에 사랑 하나 '완전 식품'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진하고 뜨끈뜨끈한 사골 국물이나 육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극장가에서도 쿨한 연애 이야기보다는 ‘쥐어짜는 듯한’ 최루성 멜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극장가에서 예상외의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너는 내 운명’이 화제다. 쿨하다 못해 냉랭해진 인간관계에 식상해 ‘지독한 사랑’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난 탓인 것 같다.

영화의 구도는 비교적 평이하다. 농촌 총각이 다방 레지에게 반해 열렬한 구애 끝에 사랑을 얻는다는 것.

서른 여섯 살의 노총각 석중(황정민)은 목장에서 예쁜 아내를 데리고 오순도순 사는 것이 꿈인, 그저 평범하고 순박한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스쿠터를 타고 다가온 천사 같은 여인 은하(전도연)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남자들에게 웃음과 몸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중은 그녀를 보고 싶어 매일 다방에 드나들고, 목장에서 갓 짠 우유를 그녀에게 갖다 준다.

‘잠시 쉬게 해주고 싶어서’ 티켓을 끊기도 한다. 세파와 남자들에게 시달려온 은하는 석중의 구애를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나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그녀의 마음 속에는 조금씩 석중을 향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이들은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지만 은하의 과거로 인해 젖소를 비롯한 재산을 처분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두 사람이 위기를 넘기고 이제야 행복해졌다 싶었을 때,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노부부의 성생활을 묘사한 ‘죽어도 좋아’로 화제를 모았던 박진표 감독은 이번에도 ‘징한’ 사랑 이야기로 관객을 찾아왔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이 신문에서 보았던 짤막한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AIDS라는 소재가 다소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눈물겨운 두 사람의 사랑은 이런 거부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톱스타 전도연과 연기파 배우 황정민의 호연도 돋보인다.

다만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되게 하는 원인이 단지 상대방의 미모였다는 설정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생겨나는 과정도 조금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실컷 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노총각 석중의 구애작전이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 목장에서 금방 짜낸 따뜻한 우유에는 그야말로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을 것이다.

포유류의 어미가 새끼에게 주는 젖은 영양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사랑까지 함께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고대부터 귀한 먹거리로 인식

사람이 영양가 풍부한 젖류를 이용한 것은 이미 고대부터다. BC4000여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우르(Ur) 지방에서는 우유를 이용한 사실을 보여주는 조각이, 자르모(Jarmo)에서는 가축으로 길러진 것으로 보이는 소의 뼈가 발견된 바 있다.

1922년 대영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유프라테스 계곡 바빌론 근처의 알 우베이드에서 작은 벽조각화판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외양간에 매인 소와 젖을 짜고 걸러내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구약 성경에서도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인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행 끝에 쓰러진 석가모니가 우르벨라 촌장의 딸이 바친 한 잔의 우유를 마시고 깨어났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의성 히포크라테스 역시 우유를 가장 완전한 식품으로 찬양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우유를 거의 먹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귀족층에서 약으로 소량의 우유를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우유를 먹기 시작했고 고려 말기에는 젖소를 기르는 유우소(乳牛所)까지 두었다. 조선 시대에 우유는 ‘타락’으로 불렸으며 왕이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궁중에서는 멥쌀가루에 물 대신 우유를 넣고 매끄럽게 쑨 타락죽을 왕에게 초조반상(미음, 응이 등을 올리는 아침상)으로 많이 올렸다.

구한말 고종은 가끔씩 의녀(약방기생)들을 별궁으로 불러들이곤 했다. 왕과 잠자리를 함께 한 의녀는 아침에 나오는 타락죽을 나눠 먹었기에 분락기(分駱妓)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우유는 생으로 마시는 것 이외에도 치즈, 버터,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식품이다.

우리나라의 유제품 소비량은 1960년대 이후로 급증하여 현재 국민 1인당 연간 46㎏ 이상의 우유를 소비하고 있다. 칼슘 섭취를 국가적으로 장려한 결과로 보인다.

동양인 중에는 우유를 소화하는 효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굳이 억지로 우유를 섭취할 필요는 없다고 하며 멸치 등의 다른 식품을 통해 충분히 칼슘 섭취를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