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 해가 걸릴쯤 가창오리떼의 군무를 보았는가

홍옥 같은 붉은 햇덩이가 서해로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자 수면에 한가롭게 떠있던 가창오리들이 우르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녀석들은 이내 거대한 구름처럼 무리 지어 다니며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하늘로 솟구치는가 하면 어느새 수면으로 다가가고, 남쪽인가 하면 이번엔 북쪽으로 쏜살같이 뻗어나간다.

아무리 뛰어난 조류학자라도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녀석들의 날갯짓은 조물주조차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장관이다.

전세계 80여만 마리 중 80~90%가 한국 찾아

한반도는 가을이 깊어지면 철새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그 중 서산 천수만은 매년 300여 종 40여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드는 세계 최대의 철새 도래지다. 올해도 10월 중순부터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화려한 군무를 펼치기 시작했다.

가창오리의 영어 이름은 바이칼 틸(Baikal Teal)이다. ‘바이칼의 오리’란 뜻이다. 이름에서 녀석들의 고향이 시베리아 바이칼호임을 눈치챌 수 있다.

수컷 머리에 초록과 노랑의 태극 무늬가 있어 북한에선 ‘태극오리’라고 부르기도 하는 가창오리는 세계적으로 80여만 마리밖에 안 되는 귀한 새다.

그래서 ‘멸종위기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수록되어 보호 받는다. 이 중에서 80~90%가 우리 나라에서 겨울을 나는데, 최근엔 개체수가 점차 늘어나 지난해엔 무려 60여만 마리가 한국을 찾았다.

가창오리는 몸길이 약 40㎝, 날개길이 약 21㎝로 오리과에서도 작은 편에 속한다. 녀석들은 낮에는 강 한가운데서 둥둥 떠서 쉬다가 해질녘에 먹이를 찾아 날갯짓을 하고, 이튿날 새벽 무렵에 돌아오는 야행성이다.

낮에 정찰 임무를 맡은 녀석이 먹이를 정탐한 뒤 해가 진 후 우두머리의 신호에 따라 비상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가 육안으로 녀석들의 군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해질녘과 새벽녘 두 차례뿐이다.

그런데 녀석들의 군무 형태는 날씨와 기압, 바람 등에 따라 매일 다르다. 특히 그날의 먹이에 따라 이동하는 곳이 차이가 있어 떼를 지어 날아가는 아름다운 장관을 눈앞에서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조류독감 걱정하지 마세요”

가창오리가 날아드는 계절이면 천수만 간척지와 간월도 일원에서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 기행전’이 열리는데, 네 번째를 맞이하는 올해 행사는 10월21일부터 11월30일까지 40여일간 계속된다.

철새기행전의 꽃은 철새 전문가이드의 아기자기한 설명을 들으며 천수만 일대를 돌아보는 탐조 투어라 할 수 있다.

천수만 철새에 관한 한 박사로 대접 받는 가이드의 감칠맛 나는 설명에 아이도 어른도 모두 귀를 쫑긋 세운다.

‘겨울철의 진객’으로 전 세계에 600여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를 비롯해 호사도요 흑꼬리도요 큰고니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천수만으로 날아든 철새들이 그의 입을 통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갈대로 위장한 탐조대 앞에 버스가 멈추자 탐조객들은 망원경으로 몰려간다. 수면에 떠있는 가창오리 청둥오리 혹부리오리, 그리고 기러기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노랑부리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는 부리를 수면에 대고 목을 좌우로 흔들며 전진하면서 먹이를 빨아들이는 독특한 녀석이다. 한국에서는 이곳 천수만과 낙동강 하구 등에만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새로 꼽힌다.

얕은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녀석들의 자태는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정겹다. 이렇게 새들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린다.

천수만 간척지와 간월호를 한바퀴 도는 탐조투어는 행사장에서 매일 7회(오전 10시~오후 4시) 출발한다.

천수만 주변의 3개소에 설치되어 있는 탐조대에서 새들을 관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다. 투어권(5,000원)을 끊으면 천수만 생태관(1,000원)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올해는 조류독감 때문에 예년에 비해 탐조객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방역대책만 잘 따르면 조류 독감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또 서산시 방역담당직원들은 탐조객들이 움직이는 호수길 바닥에 소독용 부직포를 깔고, 탐조투어코스 출입구에 투어버스 소독기 1대씩을 설치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를 철저히 했다.

철새기행전에 관한 궁금증은 홈페이지(www.seosanbird.com)를 참조하거나 전화(041-669-7744)로 문의하면 된다.

여행정보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40번 국도(안면도 방면)→광리→96번 국가지원지방도→서산A지구 방조제→간월도 철새기행전 행사장. 홍성나들목에서 20~3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서산=매일 20분 간격(06:40~19:40)으로 30여회 운행. 1시간50분 소요, 요금 6,400원. △서산→간월도=매일 14회(06:20~20:00)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830원. 서산공용버스터미널 041-665-4808~9

숙식 주 행사장인 간월도 주변에 회를 파는 식당은 많지만 숙박시설은 드문 편이다. 승용차로 30여분 거리의 안면도 해안에 깨끗한 펜션과 민박 등의 숙박시설이 아주 많다. 간월도 부둣가에 정박해있는 배 안에서 먹거리를 해결하는 재미가 특이하다. 요즘은 천수만에서 잡아 올린 새조개 샤브샤브가 인기 있다. 1㎏에 3만원. 아이 낀 한 가족이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서산횟집(041-669-4111)의 꽃게장백반(1인분 1만8,000원)과 꽃게장찜(1kg 6만원)이 별미로 꼽힌다.




글 사진/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