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 별로 뜨는 '꽃잎 다섯장'

가을 산행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쓴풀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나무가 우거진 깊은 산골이라기 보다는, 산길이라도 내면 생겨나는 길 자장자리의 볕이 잘 들고 척박하게도 느껴지는 그런 땅에서 정말 우연히 만난다.

희귀한 식물들은 알려진 자생지를 추적하여 목적을 가지고 찾아가니 만나기는 어렵지만 뜻하지 않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쓴풀은 특별한 자생지 조건을 가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만나고 싶을 때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가을 산행에서의 조우는 정말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꽃이 특별하여 한 번 만나면 금세 마음에 기쁨이 인다. 키는 한 뼘이 조금 넘는다. 한해살이풀로 분류되기도 하고 정확히는 싹이 터서 바닥에 펼쳐지는 잎만 올라오다가 해를 넘기고 꽃대가 올라오니 월년초로 말해지기도 한다.

줄기에는 잎자루도 없이 날씬하고 밋밋한 잎들이 마주 달리고, 가을이 오면 그 줄기 끝에 꽃들이 몇 송이씩 모인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꽃 색이다. 5장의 꽃잎이 별처럼 펼쳐진다.

흰빛이 나는 꽃잎에 자주색 맥들이 아주 선명하다. 활짝 핀 꽃들은 그야말로 완전하게 벌어지고 수술 암술이 올라와 돋보인다.

꽃이 지고 이내 열리는 삭과로 꽃보다 약간 길고 비죽한 모양이다. 열매가 익으며 그 안에는 둥글고 밋밋한 종자들이 담겨있다.

쓴풀 집안에는 비슷한 식물들이 몇 가지 있다. 백두산 같은 곳에서 자라는 특별한 종류를 제외하고 남쪽에서 만날 수 있을 것들만 몇 가지 소개하면, 자주쓴풀은 이름 그대로 꽃이 자주색이어서 구별이 되고, 꽃받침이 꽃잎보다 훨씬 짧은 것은 개쓴풀, 네 장의 꽃잎을 가지며 자주색 점들이 가득 박힌 것은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네귀쓴풀이다.

쓴풀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쓴맛이 나기 때문에 붙여졌다. 쓴풀은 용담과이고 용담이 용의 쓸개이니 이 쓴맛이 쓴풀 집안의 내력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쓴맛이 용담의 10배라는 기록이 있고 보면 이름이 무색치 않다. 물론 약으로 쓴다. 자주쓴풀, 개쓴풀 등 쓴풀 집안에는 유사한 식물들이 함께 당약이라는 생약명을 사용한다.

쓴풀의 쓴맛은 우선 입맛이 없거나 소화불량일 때 이용하며 염증치료 등 여러 처방이 있지만 일부 기록에는 탈모증과 머리가 희어지는 것을 막고 두피의 염증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 쓰는 방법은 쓴풀을 달여 농축한 물을 샴푸나 린스할 때 섞어 쓰면 좋다는 것이다.

쓴풀을 보면 관상용 야생화로 가꾸어도 좋을 듯 하다. 기와 빛 토분에 한 포기 담아 키우면 원색을 피한 꽃 빛으로 아주 수수하고도 품위 있는 모습이 될 듯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여러해살이 풀이니 꽃이 한번 잘 피고 난 후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 이듬해 그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산에서 쓴풀 만나 모습이 곱다고 캐어가는 일은 양심을 파는 일이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씨앗은 아주 쉽게 발아하니 씨앗부터 심어 지켜보다가 마침내 꽃을 보는 과정자체를 즐기면 좋을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