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과 인간의 소통이 남긴 메시지

대담/ 도정일ㆍ 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 2만5,000원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와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주제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벌인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엮었다. 부제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다.

도 교수는 ‘인간동물과 동물인간의 만남’이라는 초대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물학자와 인문학자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물학은 이 지구상의 온갖 생명체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종의 생명을 대대손손 이어가는지, 그 놀랍고 희한한 재주와 방법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그 넓은 생명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고 행동하며 어떻게 사랑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또 무엇을 이루고 무엇에 실패하는지, 인간과 그의 성취를 연구하는 분야다.

생물학 중에서도 동물행동학이 전공인 최 교수는 ‘동물을 연구하는 인간’이고, 인문학 중에서 문학이 전공인 도 교수는 ‘인간을 공부하는 동물’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만남은 인간과 동물의 만남이 아닐까. 인간과 동물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유전자와 문화, 복제와 윤리, 창조와 진화, DNA와 영혼, 육체와 정신, 신화와 과학, 인간과 동물, 아름다움과 과학, 암컷과 수컷, 섹스ㆍ젠더ㆍ섹스얼리티, 종교와 진화, 사회생물학과 정신분석학 등 13개 아이템을 다루고 있다.

도 교수는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라며 생물학에 대해 인문학이 거들고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가치의 앞 자리에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생각하면서 무한질주의 문명 발달을 냉철히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복제양 돌리, 인간유전자지도 발표, 배아 복제의 성공 등으로 시대의 화두는 생물학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배아 복제의 성공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됐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지 인문학과의 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은 생물학적 발견으로 인간에 대한 상이 바뀌고 있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야 한다. 인문학의 비판적 사유와 풍부한 상상력이 자연과학에 촉발을 일으키고, 반대로 자연과학의 기술적 상상력이 인문학의 비판적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세계가 서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을 열어야 하고, 소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다.

‘인간의 패러다임 변화’가 이 대담의 출발점이다. 도 교수는 최근의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인문학이 전통적으로 던져왔던 질문, 즉 ‘내가 누구인가’를 다시 던지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인간이 오늘날 인문학에서 말하는 인간으로 계속되어왔다고는 믿지 않는다며, 분명히 복합적 시각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연과학에서 볼 때 다윈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체계적으로 보여준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켜 논의를 진행하는 것보다 인간을 가운데 놓고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이책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기획된 지식사회의 횡적 프로젝트’라고 출판사 측은 말하고 있다. 생명 복제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616쪽의 만만찮은 분량이지만, 대담 형식이어서 난해함과 지루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